[리뷰고]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반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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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반공교육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4.09.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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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자치행정부장

현재 대한민국의 화두는 국가보안법 폐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일 “국가보안법 같은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보법 유지 주장이 독재에 대한 향수라며 연일 한나라당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화민주당 총재이던 13대 국회 시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하자는 안을 낸 바 있는 점을 참고해달라”며 국보법 폐지를 우회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반공교육 참회선언 기자회견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보법에 의해 만들어진 반공교육으로 교사인 자신들이 학생들을 진실되게 가르치지 못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때려잡자 공산당’ ‘박살내자 북괴군’ 등의 표어가 담긴 포스터와 그리기, 글짓기, 웅변을 하도록 했고 ‘우리의 맹세’를 통해 반공교육을 해왔다고 양심선언했다. 70세가 넘은 이 교사들은 국보법 위반으로 인해 구속까지 됐던 사람들이다.

‘때려잡자 공산당’ ‘박살내자 북괴군’ 같은 표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60~70년대 어린시절에는 이런 것들이 우리 모두를 지배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무리 작은 시골학교라도 교문을 들어서서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면 한 가운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외치다 죽었다는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 그리고 현관 입구에는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표어들이 대문짝 만하게 붙어 있었다. 지금은 학교목표가 쓰여 있는데 그 때는 이 목표보다 반공 표어가 ‘상위개념’ 이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교실 뒷 벽 ‘우리들의 솜씨’를 자랑하는 게시판에는 반공 포스터, 반공 표어로 가득찼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북한사람들을 머리가 두 개이고 뿔이 달린 도깨비라고 생각한 어린 학생들은 무조건 무시무시하게 표현하고, 당장 박살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반공 웅변대회가 열리면 지도 교사가 써 준 원고를 암기해 가능한 울분섞인 목소리로 책상을 탕탕 쳐가며 외쳐대는 것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아직 의식이 생기기 전 받았던 반공교육은 전존재에 영향을 미쳐 반공은 의심할 여지없는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버텼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 국보법 위반으로 끌려가는 선배와 동료, 후배들을 보았다. 정부가 정한 불온서적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보법 위반 딱지가 붙어 구속된 사람도 있었고, 선배 심부름을 해주다 동조자로 지목돼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이른바 ‘빨간책’이 그렇게 무서웠다.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다 구속된 것은 너무나 양호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별 것도 아닌 책을 숨어서 돌려보고, 복사해서 책표지를 다른 것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모두 다 국보법의 망령들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남북여성통일대회 참석 차 북한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 만난 북한여성들은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사상까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싸워야 할 대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 또한 남측 대표들을 반갑게 대하고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을 빼놓지 않았다. 민간인들의 남북인사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금강산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요즘, 국보법 폐지는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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