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권리도 빠진 ‘충북교육공동체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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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권리도 빠진 ‘충북교육공동체헌장’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6.05.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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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육청, 보수단체 반발의식 31일 학교별 선포식 진행
‘동성애 반대’ 내세워 거리 서명운동, 기독교계 개입 의혹
▲ 31일 도교육청이 ‘충북교육공동체헌장’을 선포하는 동안 보수 교육단체는 정문앞 반대시위를 벌였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지난 4월 청주 수동 사무실을 나와 걷던 중 맞은편 쪽에서 30대 여성이 다가왔다. “저, 서명 좀 해주실래요? 동성애 반대한다는 건데요” 손에든 서명용지를 얼핏보니 ‘교육공동체권리헌장 반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잠시 내 반응를 살피던 여성은 “교육청에서 애들 동성애 찬성하는 헌장을 만들어서 거기 반대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도 권고한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문구를 문제삼은 것이다. 학생인권을 살펴보자는 헌장이 졸지에 ‘동성애 조장’ 헌장으로 급변침하는 순간이었다. 기자가 거리에서 처음 만난 충북교육공동체권리헌장 반대운동은 이런 모습이었다.

충북도교육청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31일 ‘충북교육공동체헌장’을 선포했다. 보수적인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당초 ‘충북교육공동체권리헌장’에서 ‘권리’를 빼고 ‘공동체 헌장’으로 뒤바꿨다. 반대운동 단체와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대규모 선포식을 열려던 계획도 접었다. 도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와 충북교육인터넷방송을 통해 선포식을 중계하고, 480여 개 초·중·고교는 중계화면을 보면서 자체행사를 여는 학교별 ‘학교별 선포식’을 선택했다.

대법원, 학생인권조례 ‘문제없다’ 판결

같은 시간 반대운동을 주도해온 충북교육시민사회단체협의회(충북교사협)는 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연 후 예고했던 대로 김병우 교육감 주민소환운동을 선언했다. 교사협은 “교육주체(학생·교직원·학부모)간 협의된바 없는 헌장을 교육가족 모두가 합의한 것처럼 표현하며 헌장선포를 강행하는 건 공산당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국민교육헌장도 특정이념을 주입한다는 반대에 부딪혀 폐기했는데, 공동체헌장은 김 교육감의 특정이념을 주입하려고 만든 헌장인가”라며 헌장 제정을 이념갈등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이날 도교육청 정문앞 시위를 마친 충북교사협은 조만간 김 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충북도교육청은 대구에 이어 교육공동체헌장을 선포한 전국 두 번째 교육청이 됐다. 헌장은 ▲전문(11개 항목) ▲실천규약(3장 32조) ▲실천규약 해설·적용방향으로 구성됐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전북 등 4곳은 이미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강제성있는 조례는 권고수준의 헌장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이름처럼 학생인권 보호에 방점을 찍고 있어 교육부장관이 전북도의회를 상대로 학생인권조례 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인권조례는 헌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인정되는 학생의 권리를 확인하거나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고 있는데 불과해 교사나 학생의 권리를 새롭게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법적으로도 아무런 시비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된 셈이다.

외지 보수단체·교회 개입 정황

하지만 강원 충북 등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조례가 아닌 헌장 제정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지역 보수 교육단체 이외에 전국 보수단체들이 공동전선을 펼쳐 헌장제정을 막고 있다. 청주에서도 지난 4월 17일 새마음포럼·(사)새마음안전실천중앙회가 도교육청을 찾아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부 취재진이 “충북에서 관련 헌장을 만들려는 데 왜 다른 지역에서 와서 이러느냐”고 묻자 새마음포럼 관계자는 “헌장 제정이 충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대한민국 학생교육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새마음포럼은 2012년 결성돼 보혁갈등 현장마다 등장 보수입장 대변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은 보도를 통해 이 단체의 뿌리가 1974년 박근혜 대통령이 조직한 ‘새마음운동본부’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창립 이후 보수진영과 궤를 같이하며 크고 작은 시위, 고발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이른바 ‘피자 퍼포먼스’를 연출해 여론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개신교측 개입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4월 16일 도교육청의 타운미팅 당시 반대측 일부 참석자들은 강원, 대전 등의 교회 차량을 이용했다. 청주시내 1인시위 때는 경남 소재 교회차량에서 사람들을 타고내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청주에서는 예장소속 K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교인들에게 문자 살포, 교회 회보지 우편에 반대서명용지 동봉 등의 활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길에서 만난 ‘동성애 반대 서명’ 요청 여성도 교회 신도일 꺼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기독교계가 동성애를 내세워 교육공동체권리헌장을 반대하는 배경은 지난 4월 총선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 기독민주당 등 2개 정당은 3%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당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을 보내는 일이 가능할 뻔했다. 두 정당은 동성애와 이슬람 반대를 주장하는 극우적 공약을 내세웠다. 기독자유당 후원회장을 맡은 서울시내 대형교회 목사는 총선이 끝난 뒤 신도들 앞에서 “4년 후엔 3~4배로 커져서 원내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독자유당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반기독교 악법 저지 1000만 기독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교육공동체헌장도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반기독교 악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만족도 세계 최악, 교원 만족도는 70% 달해
3년간 청소년 자살 4만4493명, 학생인권신장 교총 반대 ‘슬픈 역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3년간 청소년 자살 사망수는 4만4493명. 스무살도 채우지 못한 꽃봉오리가 하루에 40송이씩 사라지고 있다.

자살의 최대원인인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유니세프 조사 대상 29개국 중 우리나라가 1위다. 학업스트레스가 높은 만큼 학교생활 만족도는 30개국 중 26위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고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지난 12일 전국 유·초·중·고 및 대학 교원 36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인식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들의 52.6%는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교직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대체로 그렇지 않다’(13.5%), ‘매우 그렇지 않다’(9.4%) 등 부정적인 답변이 22.9%를 기록했다.

교직만족도와 관련 문항에서는 ‘매우 만족’(16.5%)과 ‘대체로 만족’(53.7%) 등 긍정적인 응답이 70.2%를 기록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9.3%에 불과했다. 물론 교권침해 사례 등으로 과거보다 만족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70%의 만족도라면 외국과 비교해도 상위권으로 예상된다.

절반이상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고 싶고 70%가 ‘만족스럽다’고 답한 우리나라 교사들의 고통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학교라는 같은 공간안에서 두 집단의 고통지수는 왜 이런 큰 차이를 드러낼까. 학생 고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교총이 학생인권조례나 권리헌장을 앞장서 막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4월말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제5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아동의 기본권을 새롭게 강조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The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정신인 비차별 및 아동이익 최우선 원칙과 아동의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를 모든 국민이 인식할 수 있도록 헌장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결하고 교육부장관이 필요성을 강조한 ‘아동권리헌장’. 지금 충북에선 교권보호과 종교윤리로 포장된 이념 프레임이 속절없이 막아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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