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농장일, 착취일까 보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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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농장일, 착취일까 보호일까
  • 박명원 기자
  • 승인 2016.10.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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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김씨의 형, 17년 전 A씨에게 동생 맡겨
가족도 부양할 수 없어…유일한 보호자 ‘농장부부’
▲ 김 씨가 17년 간 지냈던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돼 17년간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에서 살아온 한 청각장애인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청각장애를 앓아온 김 모(57•남)씨는 청주시 옥산면 신촌리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해왔다. 취재결과 김 씨는 지난 8월까지 이 곳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장 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지난 7월 청주시 오창읍 한 축사에서 발생한 장애인인권유린 사건 이후 전수조사를 실시해 이 같은 문제를 바로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청주시 북이면 한 카센터에서 장애인착취사건이 발생해 전수조사를 통한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17년간 농장부부와 함께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에서 지내온 김 씨의 사연도 지자체의 장애인전수조사가 아닌 가족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김 씨의 친형이 이달 초 지역시민사회단체인 충북참여연대와 청주시수화통역센터에 동생을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 현재 김 씨는 복지단체의 도움을 받아 치료와 교육을 받으며 친누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가족도 부양할 수 없었던 김씨
김 씨는 17년 전인 1999년부터 비닐하우스 주인 A(71)씨 부부와 함께 지내왔다. 김 씨의 친형이 동생을 A씨에게 맡긴 것이다. 김 씨와 A씨는 당시 옥산면에서 함께 지낸 이웃이었다. 평소 A씨를 잘 따랐던 동생을 보고 김 씨의 친형이 A씨에게 동생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A씨가 이를 받아들였다. A씨는 “김 씨의 친형이 나에게 동생을 맡겼다”며 “사실 친형보다도 나를 더 많이 따랐다. 그래서 나한테 맡긴 거 같다”고 설명했다. 김 씨의 친누나도 “3남4녀 중 여섯째다. 나머지 가족들도 형편이 어려워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을 보살필 수 없었다”며 “오랜 시간 엄마가 폐지를 주우며 동생을 돌봤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서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청주의료원 근처에 살고 계신 엄마 집과 우암동에 있는 우리 집 그리고 옥산에 있는 형 집을 동생이 오갔다”며 “누군가가 보살필 수가 없으니 상당공원 근처에서 노숙을 하는 등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가족들도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김 씨를 부양할 수 없었고 김 씨를 돌봤던 어머니도 나이가 들며 건강이 악화되자 큰 형이 이웃에 있던 비닐하우스 주인 A씨에게 동생 김 씨를 돌봐 달라 부탁했고 이후 지난 8월까지 김씨는 17년간 가족과 떨어져 농장부부와 함께 지내왔다.

▲ 김 씨가 17년 간 지냈던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17년간 임금체불? 진실은?
농장주인 A씨는 지난 14일 경찰조사를 받았다. 김 씨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았다는 혐의다. A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면서 인부를 고용해 농사를 지었다”며 “의사소통이 힘든 김 씨를 인부로 쓸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씨의 친형과 다른 가족들이 사정해서 함께 지내왔다”며 “이제 와서 큰형이 경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김 씨의 친형은 동생을 맡긴 것은 인정하면서도 “농장일손이 필요하다 해서 동생을 소개시켜줬다”며 “월 35만원의 급여를 받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주인이 제대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도 최근 경찰조사에서 비닐하우스 농장 일을 했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경찰진술서에 ‘새벽 6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경 아침을 먹고 계속 일을 하다 12시쯤 점심을 먹었다. 한 시간쯤 쉰 뒤에 오후 7시까지 일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수화통역을 맡은 통역사도 “김 씨는 종이에 관련 내용을 정확이 적었다”며 “괴롭힘이나 폭행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으나 농장에서 일을 했다는 진술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A씨는 “내가 다리가 불편해 짐 몇 개를 들어 달라 시킨 적은 있다”며 “농장 일을 강제로 시키거나 한 적은 없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할 때가 있었지만 고용관계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씨가 거주한 비닐하우스 인근의 농장인부들은 “김 씨가 술을 좋아해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며 “매일 농장 일을 도맡아 하는 인부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해당마을주민들도 “김 씨가 A씨를 잘 따랐다. 가끔 농장일은 도와주는 것을 본적은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일하는 것이 서툴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오히려 비닐하우스 주인 부부가 김 씨가 일을 하면 하지 못하게 말렸다”며 “농작물을 많이 망가트려서 걱정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관계자는 “기존 장애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임금을 체불한 사건들과는 사정이 다르다”며 “경찰 내부에서도 사건처리를 두고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김 씨가 경찰조사에서 애호박을 따는 등 구체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농장 일을 했다고 진술한 만큼 향후 경찰수사에서 관련 사실이 밝혀질 전망이다.

▲ 자신들도 김 씨와 함께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며 집안 내부를 보여줬다.

“친동생같이 여겼는데...억울하다”
취재진이 해당 비닐하우스를 찾자 주인 A씨는 가족도 부양하지 않은 김 씨를 보살펴온 것은 자신이라며 김 씨의 친형이 자신을 고발한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A씨는 “그동안 단 한번 도 동생을 보러온 적이 없었다”며 “축사노예 등 장애인 착취 관련 기사가 쏟아지자 돈을 받을 목적으로 동생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씨의 친형은 “당시 A씨에게 매월 35만원의 급여를 동생에게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다”며 “돌봐준 것은 고맙지만 그동안 일을 시켜놓고 단 한 푼의 급여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라고 반박했다.

A씨는 지난 8월 김 씨를 친누나에게 보내면서 돈 1000만원을 건 냈다. A씨는 “임금지급성격의 돈은 절대 아니다”라며 “가족과 같은 김 씨를 떠나보내면서 친형의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의 친누나는 “요구하지도 않은 돈을 보내와 놀랐다”며 “그동안 동생을 돌봐 준 것도 고마운데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생전에도 농장주인이 동생과 함께 자주 찾아와 이것저것을 챙겨줬다고 말했었다”며 “농장주인도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그런지 몸이 불편한 동생을 잘 챙겨줬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씨의 친형은 A씨가 더 많은 돈을 급여로 지불하기 싫어 사전에 이를 차단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씨의 친형은 “경찰수사를 통해 결과가 나오면 따르면 될 일”이라며 “농장부부의 형편을 고려해 체불금액을 낮춰주려고 했는데 거부한 건 농장부부”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씨는 농장부부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친누나를 통해 전달해와 향후 수사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친누나는 “가족들도 농장부부에 대한 고발을 극구 반대했다”며 “아픈 동생이 원하는 건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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