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를 위해 환갑에 공부 시작한 열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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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위해 환갑에 공부 시작한 열혈남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7.03.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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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에도 국가자격증 없는 게 현실…이론 체계화 노력

자전거에 엔진을 붙인 것에서 시작된 오토바이는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가장 친숙한 이동수단이었다. 현재는 이동수단보다 상업용, 레저용으로 각광받고 있는 오토바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쓰임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최고의 1인용 이동수단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45년간 오토바이와 함께했고, 늦깎이 대학생으로 오토바이 정비 전문화와 정비사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장종신 씨를 만났다.

장종신(63·바이크짱 대표) 씨가 청주에 내려온 것은 36년 전 일이다. 부산 출신인 그는 열여덟 살 때 처음 오토바이를 접했고,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경기도에서 열린 모터사이클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1982년 충북대회 우승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일 친선대회’ 등의 이름으로 세계대회도 열렸고, 정기적으로 전국대회가 열렸지만 이렇다 할 상금도 명예도 없었다는 점이다. 국가대표라고 하지만 정부가 대회를 주최하지도 선수를 선발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순수한 클럽팀으로 각 지역의 오토바이 판매장을 중심으로 자생했다.

오토바이 판매장 대표는 구단주이기도 했고, 정비아카데미 교장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선수가 탄생했고, 정비사가 양성됐다. 언뜻 보면 정겨운 풍경이지만,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무관심이 있었고,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장 씨가 그의 인생 마지막을 후배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투신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기능올림픽 초대 감독을 맡다’

모터사이클 선수로 활약했던 그이지만, 그의 정체성은 오토바이 기술자인 ‘정비사’이다. 부산에서 오토바이 정비에 입문한 그는 수년 뒤 상경해 활동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이 분야를 대표하는 기술자로 성장했다. 현재는 한국오토바이정비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국내 최대 대회로 성장한 ‘전국 오토바이 스마트 정비대회’ 초대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장종신 씨는 명실공히 최고의 오토바이 정비사이다. 이 분야에는 정부가 부여하는 ‘명장’ 자격증이 없지만, 전국의 오토바이 정비사 누구도 그를 명장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제9회 국제 장애인 기능 올림픽대회’에 감독으로 출전했다. 오토바이 정비가 지난해 처음으로 시범경기종목에 선정됐고, 그 테이프를 장 씨가 끊은 것이다. 감독으로서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실력은 물론 지도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 45년 세월 동안 그가 배출한 정비사만 족히 100명은 된다.

‘실격패’라는 아쉬운 결과를 받아 쥐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성공적인 첫 출전이었다. 사소한 부주의로 실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금메달을 따고도 남을 점수였다.

그의 인생에서 최근 몇 년은 45년 전 처음 오토바이를 만났을 때보다 더 치열하게 오토바이와 씨름한 기간이었다. 2015년, 환갑의 나이로 충청대 항공자동차기계학부에 입학한 그는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샌 날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한 그에게 늦깎이 대학생활은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장 씨는 “눈도 잘 안보이고, 교수님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힘겨웠다”며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지만 이전보다 이론적 깊이가 더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소회했다.

20대 동기들도 제친 노익장

졸업을 앞둔 지난해에는 ‘자동차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졸업동기 중 유일한 합격자였다. 그는 올해 한양사이버대학 자동차IT융합학과에 입학했다. 자신의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론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후배들에게 오토바이 정비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자동차 관련학과를 다니는 이유는 오토바이 전문 학과가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오토바이 정비서적은 물론, 국가공인 정비자격증도 없는 것이 100년 오토바이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대형 오토바이를 운전하려면 별도로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지만, 전 세계 수많은 종류의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정비사들은 모두 ‘무면허’이다. 불법으로 정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딸 수 있는 면허가 없는 게 문제이다. 레저용 고가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양질의 정비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정비사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장 답답한 것은 정비사들이다. 장 씨의 경우도 업계에서는 명장이라고 불리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오토바이 판매점 대표일 뿐이다.

장 씨는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이론을 체계화해 주먹구구식 정비환경을 깨고, 자동차정비처럼 전문성을 인정받아 후배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장 씨 개인의 목표지만, 수많은 후배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다 보니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후배들은 이미 희망을 보았다. 장 씨를 포함한 오토바이 정비 1세대들의 노력이 최근 결실을 맺은 것이다. 친목단체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오토바이정비협회가 2013년 드디어 사단법인 지위를 얻었고, 국가공인은 아니지만 정비자격을 부여하는 시험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제도화의 첫발이라고 할 수 있는 NCS(국가 직무능력 표준)을 현재 개발 중이다. 장 씨도 개발위원으로 참여해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 오옥균 기자 oo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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