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의 삶을 ‘실격’이라 재단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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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삶을 ‘실격’이라 재단할 수 있나
  • 충청리뷰
  • 승인 2018.09.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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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김대선
청주독서모임 ‘질문하는 책들’ 운영자

중학교 1학년 때에 겪은 일이다. 수 시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오는 시골 버스를 타고 누구보다도 일찍 학교에 도착한 어느 날이었다. 교실에 아무도 없기에 얼마나 일찍 나왔나 궁금해서 벽시계를 쳐다보았더니 바늘이 멈춘 상태였다. 문득 다른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몰래 시계를 고쳐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학교 밖으로 다시 나가서 갈아 끼울 굵직한 건전지 두 개를 사서 돌아왔다.

그런데 하필 다른 아이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그 아이는 첫 수업이 시작할 때 나의 범행(?)을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알리기까지 했다. 분명한 칭찬을 들었지만, 주목받기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뜻밖의 고역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생뚱맞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돌렸다. 아마 다들 참 이상한 녀석이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발 그랬어야 할 텐데.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

비슷한 맥락의 조금 특이한 버릇 한 가지도 있다. 사람을 만날 때 갑자기 대화가 없어지는 상황을 참으로 불편하고 민망하게 생각한다. 이때는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이 먼저 나서는 법이다. 어떻게든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말문을 트고,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심지어 자학 개그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은 매사를 진중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꽤 경박하게 보일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되지, 왜 괜히 나서서 허튼소리를 해야 하는가.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최근에 읽고 세 번의 독서 모임을 열었던 소설인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타인에게 전해진 세 건의 수기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난 어린 시절의 요조는 나와 많이 닮은 괴이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첫 번째 수기에 담긴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는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예민한 기질이 잘 드러난다. 그의 독특한 성향은 지금껏 남에게 알리지 못했던 은밀한 내 경험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니 공감하지 않고 읽어낼 도리가 없었다.

작가의 성격 반영된 소설
다자이 오사무의 역작 『인간 실격』은 저자의 자전적인 면모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그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저자는 여러 번의 자살을 시도했고, 주인공 요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수한 성격으로 불리는 요조는 무언가를 잘 믿고 의지하며 기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의 가능성 또한 커진다. 요조와 저자의 삶은 그런 기대와 실망의 반복으로 심하게 얼룩져 있다.

요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회적인 ‘인간(人間)’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가식과 겉치레 풍조는 순진하고 순박한 요조가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피곤한 일들이었다. 평범한 인간으로 산다는 그 흔한 말이 요조에게는 참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그는 익살에, 여인에, 술에, 그리고 마지막 무언가에 기대어 매번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일견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요조의 삶은 곧 저자의 삶과 매우 닮았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요조의 참담한 심경을 잘 드러내는 구절이다. 그는 ‘나의 삶은 정말 인간으로서 실격이었느냐’고 강하게 외치는 듯하다. ‘누가 나라는 사람을 멋대로 재단할 수 있는가’의 반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를 완전한 구제 불능의 인간 실격자로 그리고 싶었을까? 요조 그리고 저자 자신의 삶은 그 어떠한 꿈도 희망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적어도 당시 저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극도로 예민한 성격의 요조라는 사람도, 다른 수많은 사람도 각자의 존재가치가 있다. 누가 그 어떤 기준으로 타인의 실존을 온전히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 실격’이라는 표현에는 체념과 항변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저자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요조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삶이 왜 인간으로서 실격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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