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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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고
  • 충청리뷰
  • 승인 2019.04.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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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집주인과의 만남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접해

우리 식구들은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괴산군 문광면으로 이사했다. 먼저 귀촌한 친구가 소개해준 집의 주인은 괴산에서 <어린이문화 사과>를 운영했던 분이다. 괴산군 괴산읍 신기리의 폐교에서 생태체험학교 신기학교를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는 신기학교를 나와 집 짓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이후 비슷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문화학교 숲>이라는 단체가 이어서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집을 보러 내려왔을 때 집주인 부부와 숲학교 활동가들을 모두 만났다. 그들은 뒷산을 기어 올라가고 논에 뛰어 들어가는 고만고만한 우리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었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아이들 넷을 보고 이쁘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매매로 내놓은 새 집을 전세 내주는 입장에서는 그리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을텐데 말이다.

<문화학교 숲>에 바로 등록
이사 후 4학년 첫째와 2학년 둘째는 바로 <문화학교 숲>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 해에는 텃밭을 꾸리고 농산물을 수확하여 요리까지 하는 <어린이가 손수 가꾸는 보글보글 농장 이야기>와 <가슴 펴고 어깨 걸고>라는 전래놀이 수업, 두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5년 <문화학교 숲> 인형극 수업

인상적인 것은 수업료였다. “30회. 5만원 이상의 현금, 현물, 또는 땀”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학부모가 돌아가며 차례대로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달라고 했다. 간식도, 김치와 밥도 괜찮으니 손수 챙겨주는 간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청북도와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부모에게서 땀과 손수 만든 간식을 받는 학원이라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신기했다.

이사 후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아이는 속으로는 여리면서도 꽤나 개구진 둘째 녀석이었나보다. 전학온지 이틀만에 나는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긴 상담 끝에 아이가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를 줄인 말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검사를 받아보았으면 한다고 하셨다.

이후 아이는 청주의 상담센터를 다니며 검사를 하고, 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고, 놀이치료와 미술치료를 받았다. 결국 전학 스트레스였다는 결론이었으나, 어쨌든 덕분에 나와 둘째는 일주일에 한 번 둘만의 데이트를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사하고도 한동안 창고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우리 식구는 집주인과 자주 얼굴을 보았다.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았을 집주인은 둘 째를 관심있게 관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아는 사람 없는 괴산에서 내가 처음으로 가깝게 지낸 친구인 셈이다. 또한 둘 째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에 맘껏 뛰어노는 숲학교 전래놀이 시간이 기여한 바 매우 크다.

연습실 지을 생각으로 꿈에 부풀어
그리고 그 해 여름 아이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주겠다는 천안시립풍물단 단원인 선배의 제안으로 <송평리어린이사물놀이>가 만들어졌다. 우리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이 은행정 노인정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물놀이를 배웠고, 할머니들은 아이들이 오고가니 좋다고 해주셨다. 노인정에서 모이는 것을 계기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지만 대동계에도 들었다.

2015년 <문화학교 숲>을 마친 후의 보람잔치

겨울이 되자 어르신들이 노상 모여 계시기 때문에 연습이 불가능했고, 우리는 초등학교 인근의 창고를 개조한 <문화학교 숲> 공간에 가서 연습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송평리어린이사물놀이>에 이어 어른들의 모임 <풍물패 벼리>도 결성했다. 집주인과 숲학교 선생님, 어린이사물놀이 학부모로 만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장구를 치고, 술도 참 많이 마셨다.

2016년 <문화학교 숲> 주관으로 <홍범식 고택과 함께 떠나는 신나는 이야기여행> 행사를 시작했다. 아직 단체를 만들기도 전에 매달 셋 째 주 저녁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에는 선배네 부부가 후배들을 데리고 와 공연을 하고, 나는 간식과 뒤풀이를 챙기는 정도였다. 괴산 사람들은 전문가들의 연주에 환호했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지만, 괴산에서처럼 뜨겁게 반응해주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공연자들도 즐거워했다.

우리 부부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기도 전 집을 계약하기도 전에, 집 옆의 땅을 먼저 덜컥 샀고 그 곳에 연습실을 지을 생각으로 꿈에 부풀었다. 선배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재미있는 공연을 기획해보자 하며 예산을 짜고 연습실 설계를 했다. 그러나 집 구매가 틀어지면서 연습실을 지으려고 했던 땅에 우리 집을 짓는 바람에, 다시 연습실을 꾸밀 창고를 구하러 다녔다.

2015년 송평리어린이사물놀이단
2015년 풍물패 ‘벼리’

드디어 2016년 가을, 사리면 화산리에 선배네 부부가 집을 샀다. 넓은 거실을 연습실로 꾸몄고 단체 등록을 하기로 했다. 공간이 생겼으니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이 모여 편안하게 놀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화공간 그루>라고 이름을 지었다.

<문화학교 숲> 대표에게 단체 등록하는 법에 대해 묻고 정관과 명단 등을 준비했다. <문화학교 숲>과 <문화공간 그루>, 이름부터 형님 아우 같다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원 혜 진
‘문화공간 그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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