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와 법주사, 그리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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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와 법주사, 그리고 종교
  • 한덕현
  • 승인 2020.03.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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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난 2일 신천지 이만희의 기자회견을 보고나자 허탈감이 엄습했다. 신도가 아닌 시민으로서 괜한 걱정까지 하게 됐다. 이만희의 그날 모습에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만 했다.

90 노구는 왜소해 보였고 목소리는 떨리기조차 했다. 확증편향이 강한 노인 특유의 오기와 고집마저 엿보였다. 귀도 어두웠는지 기자들의 질문은 다시 수행원의 귓속말로 전해 들어야만 했다.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남편과 부인, 자식을 빼앗겼다는 신천지 피해자들은 이만희를 가정파괴범이라며 절규를 토해 냈다.

지도자와 영웅은 위기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만희의 행색은 이와는 전혀 단판이었다. 두 번이나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고 기자회견 내내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임박한 검찰수사에 겁먹었다고까지 표현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이미지인 절대자, 절대지존, 하나님같은 존재는 좀체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이만희의 신천지로 떨고 있고 신천지가 슈퍼전파자가 되었다는 코로나로 인해 카오스(chaos)가 됐다. 아니 헬(hell)이 됐다고도 한다.

종교의 문외한인 나는 개인적으로 신천지에 대해 최근 세 번이나 크게 놀랐다. 첫 째는 지난 해 11월 12일 정오에 있었다는 자체 선교센터 10만 수료식으로,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도 청주 시내 곳곳에 서너명씩 나와 포교하는 신도들에게 꼭 물어봤던 질문도 홍보물에 실린 당시 사진이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신천지가 ‘지구촌의 전무후무한 축제’라고 내세우는 이 장면은 마치 합성으로 착각될 정도로 가히 위압적(?)이자 장관이었다.

또 하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릎을 꿇고 시험을 치고 있는 모습의 역시 홍보사진으로, 신천지측은 타 교단과 달리 젊은층 신도들이 많다고 자랑하지만 보통 시민들의 입장에선 아무리 종교라 하더라도 어떻게 저 많은 젊은이들이, 그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해 최고의 이성·이상적 담론을 즐겨야 할 대학생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그토록 우상화의 이벤트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대구 사태를 계기로 드러나는 그들의 조직망으로, 무신론자의 처지에선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여겨왔던 종교에 대해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중인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위)과 법주사 1인 시위 장면.
법주사 1인 시위 장면.
기자회견중인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위)과 법주사 1인 시위 장면.
기자회견중인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사실 종교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땐 공책과 연필 등 작은 선물에 눈이멀어 예배당을 전전했고 대학시절엔 치셤과 밀리라는 아주 상반된 처세의 신부를 염탐하며 과연 누가 ‘천국의 열쇠’를 쥘 것인가를 고민했는가 하면, 역시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지와 사랑’의 격정적인 삶을 일구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접할 때는 과연 누가 하나님의 뜻에 가장 충실하게 사는지를 놓고 밤을 새워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원초적으로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되물으며 지금도 여전히 종교의 본질에 천착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사이비로 통칭되는 이단종교의 발호와 또 이를 따르는 신자들의 광기(狂氣)는 좀체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만희가 기자회견을 하던 시간대에 공교롭게도 속리산 법주사에선 차기 주지를 뽑는 산중 선거가 있었다. 그 직전에 이 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선거와 관련된 1인 시위에 등장한 문구들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도박꾼’ ‘도박 현행범’ ‘해외 원정도박’ ‘카지노 사장 후보’ 등등.

지난 2월 17일 조계종 총무원은 법주사 말사주지 4명에 대해 도박을 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의결했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8명의 스님들이 도박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고 있고 당초 주지 후보로 등록한 7명 중에 도박 당사자가 포함되어 대중스님들의 반발을 사게 되자 선거 바로 전날 5명이 전격 사퇴, 결국 2파전으로 치러져 현 주지가 재선된 것이다. 시위에 등장한 글들은 재선된 정도 스님을 겨냥한 내용이다.

“보통 이제 처음에 시작할 때 한 3백만 원 정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4백 받고 4백 더하면 8백이 되지 않습니까. 그 순간에 베팅한 것만 8백, 거기 판돈 처음부터 쌓인 돈까지 하게 되면 그것의 몇배가 되죠. 시작을 하면 풀(끝)까지....새벽 3시가 예불시간이거든, 그때 선방 스님들은 고요히 앉아서 참선을 시작합니다. 밤새 도박하다 새벽 예불 드리러 법당으로 향했어.” 실제로 도박에 참여한 스님이 얼마전 MBC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스님이 아니라 시정잡배들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다.

이 스님의 주장은 그 자신의 은행통장에서 확인된다. 그는 절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보은농협 속리산지점에서 오후 3시 15분과 17분 100만원과 70만원을, 그리고 오후 10시 21분부터 26분까지 4차례에 걸쳐 400만원을 인출했다. 170만원으로 도박에 뛰어들었다가 다 잃자 400만원을 추가로 뽑았던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주로 도박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차를 마시는 다각실과 숙소인 견불당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또 지난 2008년 현 주지와 호텔에서 도박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전력이 있다고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부대중과 속인(俗人)들은 속리산의 법주사를 찾아 속리(俗離)의 신심을 얻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들일 것이다. 한데 이를 이끌어야 할 스님들은 산중 하우스(?)에 숨어 화투판이나 벌였다는게 아닌가. 법주사는 주지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돈선거 추문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났다.

흔히 종교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한다.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종교에 대한 불경(不敬)인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가정을 결딴내고 도박이나 즐기는 그들을 믿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여, 차제에 마르크스가 말했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과연 이 말이, 아편이 진통제로 사용되듯 종교는 곧 이를 믿는 사람에게 인간 본질의 ‘환타지적 영혼의 세계’를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됨을 의미하든, 혹은 표피적인 어감 그대로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악의 소재가 됨을 시사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번 신천지와 법주사의 사례처럼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종교와 또 그 종교가 우리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합리적인 건지, 아니면 정상적인 것조차 유린하는 반이성, 반문명 인지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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