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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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의 공방
  • 한덕현
  • 승인 2020.08.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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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요즘처럼 검찰과 검사에 관한 것들이 원색적인 공방으로 회자된 적도 없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개혁’이라는 화두가 국가적 의제로 불거지기 전만 해도 검찰은 일종의 성역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방언론은 특히 더 그랬다. 취재는 조심스러웠고 보도 또한 각별한 신경과 조심이 요구됐다. 기자 스스로가 극도의 신중을 기하는 이른바 ‘자기검열’이 만연했던 게 검찰 관련 취재와 보도였다. 이 때문에 검사나 수사관들과 친분을 쌓아 검찰발 정보를 많이 얻어듣는 기자에겐 '유능'과 ‘민완“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가 쓴 기사는 ‘특종’이 되기 일쑤였다.

지난 7일 있은 검찰 고위직 인사에 반기를 들고 사직한 문찬석 검사장이 친(親)정권 성향으로 얘기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향해 “(그를) 검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동안 검찰개혁과 관련해 조직의 수뇌부를 줄곧 비판해 온 임은정 검사가 문찬석을 한동훈(검사장), 이원석(수원고검 차장검사)등과 함께 검찰 적폐의 3인방으로 꼽으며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교한 검사”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이번엔 진중권이 나서 임은정을 “간교한 사골 검사”라며 독설을 퍼붓는다. 임은정이 자신의 겸험을 바탕으로 계속 검찰의 조직문화에 일침을 가하자 “뼈 하나로 사골을 몇 년동안 우리는지...”라고 빗대어 냉소한 것이다.

검사 출신의 미래통합당 김웅 의원은 “애완용 검사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자조했고 경찰신분으로 검찰과 맞서다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한국 검찰은 준(準) 정당처럼 움직인다’는 조국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하며 “한국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허구”라고 전제한 후 “검찰은 조직의 이익에 따라 맹견이 되기도 하고 애완견이 되기도 한다”고 일갈했다.

단견이겠지만 이들의 말만 들어도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이미 변해도 많이 변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식 또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상하 가릴 것 없이 구성원들이 서로 치받으며 간교하고 애완용 같다는 비아냥까지 주고받고 있으니 ‘검사동일체’로 무장해 오랫동안 누려왔던 철옹성의 권위는 이제 무색하게 됐다. 그 것이 실체가 아닌 껍데기의 이미지 일지라도 상징하는 의미는 분명 크다는 것이다.

검사들로부터 불거지는 일련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정치와 권력의 영역에서 추구되던 검찰개혁도 이제는 스스로의 내부 동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답을 이번에 기발한(?) 단어들을 동원하며 말싸움을 벌인 그들로부터 찾은 꼴이 됐다. 우선, 그동안엔 감히 드러내지 못한 치부가 조직 내부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는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최고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는 심각한 도전을 받은 문명은 이를 극복하고 찬란하게 발전했지만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했다고 했다.

어떤 조직이든 개혁의 가장 선(善)은 내부로부터 동력을 얻는 경우다. 이게 아니고 외부의 간섭에 의한 변화라면 반드시 부작용과 시행착오가 따른다. 윤석열 체제에서 검찰개혁이 논의되는 현 상황은 두 가지에 다 해당된다. 내부 구성원들이 비로소 자기목소리, 그것도 상식을 유린할 정도의 격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민낯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검찰개혁과 변화를 위한 호재도 없다.

과거 식민·독재시대에 지나칠 정도로 과다하게 성립된 권위와 힘에 안주했던 검찰은 이제 스스로 변화의 몸부림을 쳐야 할 때가 됐다. 내부의 가장 순수한 도전에 조직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응전하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목하 권력과 정치에 마구 휘둘리는 대한민국 검찰의 앞날은 지금보다 더 불행해 질 수 있다. 졸지에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윤석열이 꼭 새겨들어야 할 것도 바로 이거다. 어차피 권력은 탐욕, 이기적이고 자비롭지도 않다. 때문에 권력에 의한 검찰개혁 공방이 연일 나라를 들쑤시고 그 한복판에 윤석열의 구태한 검찰주의가 놓여있다면 언젠가는 본인 스스로가 권력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찬석이 말했듯 검사라고 해서 다 검사가 아니듯 잠깐 지지도가 오른다고 해서 다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극심한 여야 대립과 끝간데없는 진영다툼, 부동산 정책 공방, 초유의 물난리, 여기에다 언론의 대책없는 편가르기 등으로 하루도 바람잘날없는 최근의 시국을 놓고 사석에선 국가개조론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나라도 그렇고 국민들도 그렇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합리화시킬 목적으로 국가개조론을 들먹였고 박근혜는 세월호로 인한 민심이반을 차단할 목적으로 국가개조론을 설파했다가 오히려 말년에는 초라한 몰골로 추락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근자의 국가개조론은 정치성향이나 현 정부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그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에서 자발적으로 입에 올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전혀 상반된 논리로 주창되어 지금까지 종종 논란을 빚고 있지만 이러한 국가개조론이 근자에 가장 국민적 공감을 얻은 것은 지난 2012년 말에 교수신문이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을 때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하고 썩었다는 뜻으로 당시에도 직업, 계층,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는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그러자 비록 잠깐이지만 나부터 정직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회적 담론이 양산됐고 이에 많은 국민들이 호응했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총장이 현 정권을 향해 독재와 전체주의를 입에 올렸다면 본인부터 정의롭고 깨끗해야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응징하려 했던 조국과 비교해도 윤석열은 여전히 가족문제와 무소불위 검찰주의자라는 비판에 떳떳하지 못하다.

문찬석이 이성윤을 결코 검사로 여기지 않겠다고 작심했다면 한 때 한솥밥을 먹던 후배 임은정에게는 간교한 검사라는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격적 완벽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도덕, 공정성만큼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임은정이 말하듯 검사들이 이런 것들을 먼저 깨우칠 때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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