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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유전자를 가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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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유전자를 가진 평화
  • 충청리뷰
  • 승인 2020.08.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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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소총, 그 이율배반의 동거

 

아침 일찍 오스트리아 빈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중서부 잘차흐 강 유역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로 모차르트의 생가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이 있어 흔히 음악의 도시로 불린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음악이 아닌 전쟁을 먼저 보았다. 잘츠부르크에서 첫 번째 일정이 바로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였던 것이다. 해발 120m,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요새는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교황 서임권 투쟁에서 독일 남부 황제파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구축했다고 하는데, 그 후 여러 변화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걸어 올라가도 되지만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여서 푸니쿨라(일종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약 3분 정도 걸렸다. 올라보니 잘츠부르크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아침에 내린 눈발 탓이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잘츠부르크 시가지가 정갈하고 서늘했다. 멀리 잘차흐 강 너머 알프스 산맥이 나지막이 엎드려 있었다.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넓었다. 그러나 딱히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없었다. 더구나 안내판을 읽을 수도 없으니 조금은 무료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바로 기타와 소총이 나란히 진열된 전시실이었다.

기묘했다. 기타와 소총의 동거라니……. 기타가 노래라면 소총은 다툼이다. 기타가 평화라면 소총은 전쟁이다. 기타가 생명이라면 소총은 죽음이다. 그런데 그 둘이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백년지기처럼.

기타와 소총
기타와 소총
잘츠부르크 전경
잘츠부르크 전경

 

인류의 역사상 언제 한 번이라도 평화를 갈구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분쟁과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유비무환을 내세워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군사력 증강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런데 그 명목은 언제나 평화였다. 동서고금이 동일하다.

그리하여 소총은 평화를 빌미로 장전을 하고, 기타는 평화를 빌미로 소총을 부른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기타와 소총, 그 배후에는 평화가 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그 이율배반의 상징을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에서 본다.

기타와 소총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

적들은 물러갔다 그는
소총을 벽에 기대어 놓고
연둣빛 기타를 집어들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는 환희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본성이 평화주의자였으므로
그의 한쪽 어깨에는 언제나
기타가 메어져 있었다 그러나
평화의 척추는 선천적으로 허약하여
한 점 바람에도 쉽게 무너졌다
그때마다 당대의 명의들이 처방전을 냈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 효험을 부정했다 암암리에
평화의 척추는 불치의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냐는 풍설이 나돌았다
그도 한때는 연금술사들이 거주하는
황금소로를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주의자였다
연금술은 이제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그 이후로
그는 요새에 은거하여 주저 없이
기타 곁에 소총을 세워 두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무너진 곳에는
다만 피의 총성이 필요할 뿐
연둣빛 화음의 끝에는
언제나 화약 냄새가 흘러 나왔다
그는 슬쩍 소총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총열이 식지 않은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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