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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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개
  • 한덕현
  • 승인 2020.12.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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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뜻밖에도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민사 소장이 날아왔다. 원고는 검찰 고위직 출신 이건개 씨(이하 존칭 생략)다. 충청리뷰에 게재된 칼럼을 들어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필자인 나와 편집국장, 법인을 상대로 3천만원(1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문제의 칼럼은 2020년 9월 11일자로 보도된 <그들이 ‘공정’을 말하면 안 되는 이유> 제하의 글이다.

소장의 내용과 칼럼의 취지를 꼼꼼히 살펴봤지만 피소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건개는 해당 칼럼의 주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다만 다른 이를 묘사하는 과정에 만인이 다 아는 단순한 사실로써 딱 한 번 그의 이름을 적시한 게 고작이다. 이 글은 최근 코로나 재난지원금 및 추미애 아들 휴가논란과 관련해 요즘 한창 대권주자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재명과 홍준표가 ‘공정’을 입에 올린 것을 나름 비판한 내용이다. 두 사람을 둘러싼 각종 구설수를 거론하며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본인들부터 공정의 가치관과 삶을 실천하라는 내용이다.

특히 이건개가 소장에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홍준표와 관련된 것으로, 홍이 정치적 입지를 결정적으로 다지게 된 ‘강골검사’란 이미지가 굳어진 배경을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개는 칼럼 내용중에 ‘(1993년)슬롯머신 수사로 6공 황태자 박철언과 까마득한 검사 선배인 이건개를 구속시켜....’라는 부분에 착안해 문제를 걸었다. 이건개는 당시 구속이 권력의 탄압에 의한 표적수사의 결과물이고 이후 재판을 거쳐 무죄를 받았음에도 칼럼에선 이런 전후관계를 무시하여 결과적으로 심각한 명예훼손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론하지만 이 칼럼의 취지는 원초적으로 그의 형사건을 반추하려는 게 아니다. 홍준표에게 늘 따라다니는 강골, 소신이라는 의미를 그가 수행했던 사건의 팩트를 들어 진단하려 했던 것이고 때문에 칼럼의 총체적인 의도와 취지를 따지더라도 이건개의 구속 이후 재판과정이나 수사상의 불합리를 적시해야할 필요성과 의무는 없다. 전체의 문맥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이건개의 주장처럼 ‘명백한 허위의 사실이거나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은 추호도 없다. 어쨌든 이건개가 당시 홍준표의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실체이고 이 사건을 계기로 홍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각인된 것도 엄연한 진실이다.

갖가지 전문 법률용어가 동원된 소장을 접하며 정작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느낀 것은 따로 있다. 이건개의 구속 이후 재판 결과와 또 그가 주장하는 당시 정권의 표적수사 의혹이다. 지금도 중장년의 연배들에겐 이건개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나라 사법시험 1회 출신으로 1971년 31살의 나이로 지금의 서울경찰청장인 서울시경국장에 파격 발탁된 것에서부터 대검중수부장, 대검공안부장, 서울지방검찰청검사장, 대전고검장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일찌감치 차기 검찰총장감으로 지목됐던 인물이다. 호걸형 외모부터가 남달랐다.

그랬던 그가 1993년 세상을 시끄럽게 한 슬롯머신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는 소식은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슬롯머신의 대부 정덕진 측으로부터 청탁명목으로 5억42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지만 재판에선 투자목적의 단순 금전거래로 인정돼 뇌물수수혐의(특가법위반)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다만 이 돈으로 인한 이자부분만 뇌물(금융이익)로 판단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는다. 이후 항소심에서 구속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져 풀려나게 된다.

이건개(사진 오른쪽)와 홍준표는 둘의 필연적인 관계 때문에도 잊을만 하면 언론에 종종 이름이 같이 오른다. 사진은 tv조선의 강적들 방송화면 캡처.
이건개(사진 오른쪽)와 홍준표는 둘의 필연적인 관계 때문에도 잊을만 하면 언론에 종종 이름이 같이 오른다. 사진은 tv조선의 강적들 방송화면 캡처.

 

사실 이건개의 입장에선 홍준표 얘기가 거론될 때마다 자신은 이같은 무죄판결이 묻혀진 채 주로 구속으로만 기사화되는 것에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명예회복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다툼을 벌였다. 2003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던 홍준표가 이건개에 대한 수사와 구속 사실을 기록한 자서전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를 자신의 홈페이지 ‘저서 모음’에 올리자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3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한다. 1심에선 홍준표가 승소했으나 항소심에선 법원의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홍 측이 ‘이건개가 슬롯머신 업계의 비호세력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삭제하고 향후 같은 내용을 게시할 시엔 이건개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한다’는 조건이었다.

2006년엔 KBS가 ‘슬롯머신 사건의 정덕진에게 거액의 뇌물은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는 보도를 내자 명예훼손으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15년엔 경남도지사로 있던 홍준표가 당시 정계를 발칵 뒤집은 성완종 뇌물사건에 연루돼 그의 검사시절 무용담이 회자되면서 이건개 본인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이례적으로 “홍준표가 이건개를 수사 및 구속 기소했다고 (언론에서) 게재되고 있지만 이는 진상과 다르다”는 취지의 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홍준표는 당시 담당 주임검사가 아니었고 더욱이 그 사안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 소속이 아닌 서울지검 소속의 평검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홍준표가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고골적인 불편함을 드러냈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박철언 수사를 전담하던 홍준표는 스롯머신 사건이 확대되면서 대검 중앙수사부로 파견돼 이건개 수사까지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이건개의 명예회복 의지가 남다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충청리뷰에 특별송달된 이건개의 민사 소장에는 특히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내용이 있다. 자신의 억울한 구속은 뇌물수수 때문이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소장엔 대통령으로만 표기됨)에게 밉보인 것의 보복, 표적, 하명 수사 결과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고통을 당했던 것은 포퓰리즘을 지향했던 대통령과의 마찰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대통령은 서울지검장이던 나를 모처로 수차례 불러 수첩을 꺼내 몇몇 특정인을 지칭하면서 구속할 것을 지시했으나 거부했다. 1992년 대선정국에서 불거진 부산 도청사건(초원복집사건을 지칭)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해서 도청당한 사람들을 오히려 엄벌하라고 지시했지만 거절했다. 그 후에도 대통령은 한풀이로 정적 여러명을 구속수사하라고 했다. 대통령이 요청하는 표적 사정에 순응하지 않자 나를 대전고검장으로 보직이동시키고 내가 부당함을 항의했던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나에 대한 구속 엄벌지시를 하여 억울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한 쪽 당사자인 YS가 이젠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사실이라면 30년이 지난 이제라도 이건개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권력 실세와 하늘같은 선배검사까지 구속시킨 소신과 강골검사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홍준표는 되레 커밍아웃을 해야할 판이다. YS의 부당한 하명수사를 수행한 것밖에 안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홍준표의 정치력을 담보해 온 그의 닉네임 ‘모래시계 검사’는 말짱 거짓, 허구가 된다. 그 또한 권력의 충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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