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상서
상태바
아버지 전상서
  • 한덕현
  • 승인 2021.01.27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오랫동안 못 만난 지인에게 별 생각없이 안부 전화를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데 이 것도 끝나간다면서 걱정이라고 했다. 잘 나가는 공기관을 퇴직하고 어렵게 개인 기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마저 지난 해 그만 뒀다고 한다. 그러면서 많지는 않지만 고정수입을 안겨주던 실업급여가 자기삶에 이렇게 소중한줄 미처 몰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주변에선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 과거에는 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소리소문없이 수혜(?)를 받았지만 요즘은 드러내놓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코로나에 오래 시달리다보니 사람들의 감성이 더 무뎌지고 용감해졌는지, 이젠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코로나 이후 실업급여 신청액수가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11조 8000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47%나 급증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까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고 걱정들이다. 아예 실업급여도 못받는 자영업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너도나도 투잡 전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이조차 구하기가 힘들다는 뉴스도 많이 달려있다.

형편이 어려워질 수록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건 집안의 가장, 아버지들의 고단함이다. 물론 평소 가정을 책임지고 사는 어머니들이라면 이것도 차별이겠으나 편견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들의 어깨가 더욱 처져 보인다. 궁금하다면 시내 공원이나 근교의 가까운 산과 산책로 등을 다닐 때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옆에 놓고 벤치나 공터등에 앉아 혼자 오랜 시간 보내는 사람들의 거개는 중장년 남자들이다. 여성들은 한담을 나누더라도 혼자인 경우는 드물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실직하거나 벌이가 시원찮은 많은 가장들에게 요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다. 집에 있자니 눈치가 보이고 밖으로 나간다고 해봤자 주머니 사정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평소 살갑게 느껴지던 자녀들조차 대하기가 버거워진다. 실제로 삶이 어려워지면 엄마와 자녀들의 대화는 늘어나지만 아버지와 자녀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진다는 조사도 있다. 똑같은 경제난인데도 이번 코로나 불경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서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무슨 학술적인 정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경제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은 가족이나 부모에 대한 각별한 정서, 이른바 ‘패밀리 신드롬’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신청, 즉 국가파산 시기에는 한 장편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민들을 울렸다. 김정현의 ‘아버지’이다. 갑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를 사는 작품 속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눈물겨운 사랑을 쏟는 모습은 당시 IMF 사태로 졸지에 거리의 낭인으로 추락한 그 시대의 가장들과 오버랩되며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건드렸다.

제2 환란으로 불리던 2008년 세계 외환위기 때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국내 밀리언셀러를 넘어 세계시장에까지 소개되며 무려 22개 나라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자식의 집에 가려다 남편의 손을 놓쳐 실종된 치매 어머니를 찾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휴머니즘보다도 강렬하게 지구인을 자극했다. 이 역시 경제적 어려움은 곧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1997년과 2008년보다는 덜 하지만 1년 내내 암울한 경제뉴스가 나라 를 짓눌렀던 2013년에는 박범신의 소설 ‘소금’이 또다시 ‘경제난 속의 가족 소설 불패’라는 신화를 이어갔다. 어느덧 힘이 떨어지고 가정에서조차 점차 입지가 좁아지자 끝내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결국 살기 위해 찾은 염전에서 소금을 거두다가 쓰러지고 마는 주인공을 접하며 독자들은 가족들도 모른채 혼자 고립무원의 외로움과 고통을 삭였을 가장, 아버지들을 떠올린 것이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속에서 언제나 외로웠던 아버지,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가고 없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거든, 어느날 아버지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봐. 이를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들은 더 집구석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가족을 대하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가족들의 썰렁하고 냉랭한 분위기에 끝내 아버지는 속으로 울 수밖에 없다.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을 채운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기다.

혹시나 하여 서점에 들렀더니 베스트셀러 코너에 과거처럼 심금을 울리던 가족소설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주식이니 비트코인이니 하며 온통 돈버는 얘기와, 비대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고 적응하기 위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스킬 뿐이다. 이번 코로나 경제위기가 과거 외환·금융위기 때의 경제위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가뜩이나 비대면 문화로 사람들을 갈라놓더니 이젠 가족에 대한 밑바닥 정서까지 메마르게 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디지털에 치이던 중장년 아날로그 가장들은 더 이상 갈 곳없는 코너로 몰리는 느낌이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게 곳곳에 폐업이나 휴업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이를 볼 때마다 어디선가 한 가정이 무너지고 있고 또 어디엔가 그 가정을 이끌던 가장이 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도내 지자체장들은 국가와는 별도로 자체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일언지하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박정하게 선을 긋는다. 서민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똑같은 말이라도 좀 더 예의를 갖춰 할 수는 없을까.

때만 되면 또박 또박 급여가 나오는 그들은 지금, 끝간데없이 무너지는 이 나라 자영업자들과 가장들의 눈물을 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애먼 국민세금으로 이웃돕기성금을 내며 생색낼게 아니라 이렇게 어려울 때 자신의 급여를 단 1%만이라도 쾌척하려는 도지사와 시장·군수, 공직자들의 진정성을 보고 싶은 요즈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