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시설 없는 7개 군에서 신생아 5명은 구급차 출산
전담 구급대라지만 예비 구급차에 전 구급대원이 활약
알아서 낳으라.... 각자도産
그다음에 떠오른 건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할머니 이름은 왜 ‘허질순’이야?” “우리 엄마가 산달에도 밭일하러 가다가 질 위에서 태어났으니까, 질순이지.” ‘질’은 ‘길’의 방언이다. 기름이 ‘지름’이 되고, 기둥이 ‘지둥’이 되는 것처럼, 구개음화(口蓋音化)의 영향으로 생긴 사투리다. 1919년에 태어나 1999년 작고한 고 허질순 여사의 작명 유래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난해, 충북에서는 모두 다섯 명의 아기가 병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 119구급차 안에서 태어났다. 2022년에 119구급차로 긴급 이송한 임산부는 155명에 이른다. 평균 2.35일에 한 명꼴이다. 충청북도 소방본부 산하 열두 개 소방서 가운데, 보은, 옥천, 증평, 괴산, 단양, 음성 등 여섯 개 소방서가 임산부 전담 구급대를 운영한 이유다. 이들 여섯 개 군은 분만 시설이 없다.
충북소방본부는 올해부터 영동군에서도 임산부 전담 구급대를 운영할 계획이다. 영동군에는 분만 시설이 있지만, 교통 여건상 영동읍보다 인근 경북 김천 등으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충북소방본부는 군 지역에 결혼이주여성이 많은 점을 고려해 영어·중국어·베트남어 등 열네 개 나라 언어를 지원하는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월 7일, 괴산군 연풍면에 사는 이 모(41) 씨는 괴산소방서 119구급차를 타고 충북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인 이 씨는 셋째 아이를 가졌는데, 임신 39주 차 만삭이었다. 임신중독증으로 치료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괴산엔 산부인과가 없어서 70여㎞ 떨어진 충북대병원까지 119구급차를 탔다.
“전용 차량이 있는 건 아니다”
이쯤 되면 충북소방본부에는 임신부나 임산부 이송을 담당하는 별도의 전담 구급대라는 조직이 있고, 전담 인력과 차량, 장비가 배치돼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김영환 충북지사도 2월 17일, 청주 시내 대형 산부인과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분만 불가 지역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119 전담 구급대를 확대 운영하고, 장비를 더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충북소방본부 안에 임신부나 임산부를 위한 전담 인력은 없다. 이들을 태우기 위한 전용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임산부나 임신부를 이송하는 차량은 구급차의 사고나 고장에 대비해 보유하고 있는 ‘예비 구급차’다.
임산부나 임신부를 이송하는 구급차에는 보통 구급대원 두 명이 탑승하는데, 출산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세 명 이상이 탑승하기도 한다. 충북 도내 소방서에 소속된 구급대원이라면 누구라도 임산부나 임신부 이송 구급차에 탑승할 태세가 돼있다는 얘기다.
변금례 충북소방본부 구급팀장은 “도내에는 일흔 개 구급대에 657명의 구급대원이 있다”며 “이들 중에 330여 명은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고, 80여 명은 간호사들이어서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 더! 예비 구급차만 임신부‧임산부를 이송하고 상황에 따라 분만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변금례 구급팀장은 “기존 구급차에도 ‘분만키트’가 있어서 유사시 분만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신생아 이송에 최적화된 키트를 추가로 갖추기 위해 추경에 예산 반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전 예약 119안심콜 권장”
한 마디로 전 대원의 요원화, 전 장비의 활용인 셈이다. 그렇다고 손뼉이나 칠 일은 아니다. 길 위에서라도 안전하게 출산해서 다행이지만 ‘길 위의 출산’은 권장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금례 팀장도 “사전 예약인 ‘119 안심콜’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주문했다. 119 안심콜은 분만 취약지역인 일곱 개 군에 거주하는 임신부들이 보건소를 통해서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는 제도다.
변금례 팀장은 “119 안심콜은 임신부가 자신의 임신 주차와 다니는 병원, 건강 상태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분만 시점 등에 맞춰 예약하면 시기에 맞춰 통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제도”라며 “임신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고 권했다. 실제로 최근까지 일곱 개 군의 임산부 710명 가운데 152명(21.4%)이 이 서비스에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갑자기 산통이 오는 등의 위급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출동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올들어 2월 21일까지 충북소방본부에서 임신부나 임산부를 위해 출동한 건수는 스물세 번으로 작년보다 늘어날 조짐을 보였다. 아직 길 위의 출산은 없었다. 하지만 “더 급한 상황이어서 일단 집에서 출산을 돕고, 병원으로 이송한 전례가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