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888년에 조선 침략 지침서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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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888년에 조선 침략 지침서 펴내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5.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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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육군 참모국 정탐 활동 ‘조선지지략’ 8권에 담아
일제강점은 1870년부터 정한론을 외치며 조선을 염탐하고 침략을 준비한 일제의 주도면밀함 속에 자행된 것이다. 일제는 1888년에 8권 분량의 ‘조선지지략’을 책으로 엮었다. 사진은 권2 충청도 편.
일제강점은 1870년부터 정한론을 외치며 조선을 염탐하고 침략을 준비한 일제의 주도면밀함 속에 자행된 것이다. 일제는 1888년에 8권 분량의 ‘조선지지략’을 책으로 엮었다. 사진은 권2 충청도 편.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일본 총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이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424,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WP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말실수가 아니다. 삼일절 기념사에서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망했다는 전형적인 식민사관이다. 당시는 안으로 자국 민중을 수탈하고, 밖으로 전쟁을 벌이면서 식민지를 강점한 야만의 제국주의 시대였는데 말이다.

1870년부터 한국정벌준비

일본은 침략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치밀하고 집요했다. 충북학연구소가 202012월에 발간한 충북학자료총서 13권은 <조선지지략 발췌 충청북도>. 정삼철최병철 연구원이 펴낸 이 책은 일본육군 참모국이 1888년에 간행한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 가운데 충북에 해당하는 내용만 떼어내 번역한 책이다.

정삼철 충북학연구소장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대부터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우며 침략을 위한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1871년에 이미 병무성 산하 육군부 참모국과 해군부 수로국을 만들어 첩보 활동과 지도 제작, 지지(地誌) 편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10년여의 간첩 활동으로 모은 정보를 수록한 책이 <조선지지략>인 셈이다. 이 책은 모두 여덟 권으로 만들었는데, 충북에 관한 내용은 2 충청도지부에 들어있다. 충북편은 청주목, 충주목, 청풍부, 단양군, 보은군, 괴산군, 옥천군을 비롯해 문의현, 황간현, 제천현, 회인현, 연풍현, 음성현, 청안현, 진천현, 영춘현, 영동현, 청산현 등 충북을 모두 열여덟 개 지역으로 구분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철저하게 군사적인 관점에서 쓰였다. 지형 등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했지만, 물산 등은 조선의 자료를 옮겨놓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주목의 읍치(邑治)에 관한 기록 중에는 “(청주읍성) 벽의 둘레는 대략 10한리(十韓里)이며, 4개의 문이 있다. 목사청(牧使廳)은 문에 청주아문(淸州衙門)이라고 편액하였다. 충청도병사(忠淸道兵使)가 이곳에 머물면서 충청도 54개 관청의 병마권(兵馬權)을 관장하는데 이것이 병마절도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읍성 관련 기록에는 성내에 있는 건물의 이름과 위치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읍치에는 또 청주와 인근 군현의 방향과 거리에 관해서 소상하게 나와 있다.

정삼철 소장은 조선지지략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로, 그들은 조선에 대한 정보를 모아 실제 침략의 도구로 사용했다문제는 당시의 조선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뿐더러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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