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보내려면 청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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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보내려면 청주로 가야 한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3.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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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때부터 ‘청주로, 청주로' 자녀 교육·취업 등 이유로 고향 등져

“충주에서 대학 졸업해봐야 취업할 데가 있는가. 그래서 젊은층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가느냐, 아니면 청주로 나가느냐 고민을 하다 고향을 등지게 된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없어 20년전에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돌아가봐도 충주는 그대로다. 그 만큼 지역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체돼 있다. 그리고 문화를 즐길 만한 문화기반시설도 거의 없다. 사정이 이러니 충주 인구가 줄 수밖에 없다.” 충주가 고향인 이주영(33·자영업)씨의 말이다.

제천에 사는 김영희(45·주부)씨는 올 신학기에 맞춰 고등학교 1·2학년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청주로 이주했다. 제천에서 사업을 하는 김씨의 남편은 이른바 ‘기러기 아빠’가 되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김씨는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주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면 최소한 고등학교 때는 나와야 한다. 거기 남아서 잘 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우리는 불안해서 이주를 결정했다. 제천에서는 갈 만한 대학도 마땅치 않고, 졸업해서 눌러 사는 경우는 거의 없어 어차피 청주나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한다. 이렇게 두 집 살림을 하려면 생활비가 배로 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어떻하겠는가. 아이들의 장래가 걸려 있으니…”라는 그는 “고향을 등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자녀 교육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도시 집중현상
이씨와 김씨의 말은 오늘날 충북도내 소도시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충북도만 놓고 볼 때 청주시는 북적되는데 반해 다른 지역은 텅텅 비어 있다. 또 다른 도시 집중현상인 셈이다. 따라서 수도 서울이 모든 인적·물적 자원으로 넘쳐나는데 지방은 돈과 사람 ‘가뭄’으로 허덕이는 현상과 다르지 않고, 청주를 제외한 충북도민들이 바라보는 시각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충북도에서는 청주시만 집중 육성하지 다른 지역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일종의 패배의식 같은 것들이 그 것이다.

충주 시민 모씨의 말이다. “충주는 60년대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시승격이 빨리 됐고, 박정희 정권 때 충주비료공장이라는 중화학 산업시설을 매우 일찍 유치했다. 당시 충주비료공장이 충주 사람들을 먹여살렸다. 지금의 삼성그룹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러다가 80년대 초반 충주호 일원이 한강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비료공장이 영남권으로 이동하면서 충주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를 대치할 만한 산업시설이 있거나 그외 인구 요인시설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없어 충주가 오늘의 모습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충주는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든다.”

충주는 실제 올 3월 여주-충주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고속도로 한 개가 없었고 국갇지방산업단지가 전무하다. 도내 제2의 도시인 충주가 이 정도이면 다른 지역은 얼마나 낙후됐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충북도민들이 청주로 몰리는 중요한 이유는 대체로 자녀의 교육과 취업, 문화향유 욕구 등으로 요약된다. 청주사람들이 아이들을 서울소재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강남으로 ‘유학’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일찌감치 자녀들을 청주로 내보낸다.

교육문제 가장 중요한 원인
그 나마 충주·제천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인근 지역 학생들까지 유인하는 면이 있지만, 음성·괴산·진천 등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거의 청주로 나오는 형편이다. 굳이 중·고등학교를 고향에서 다닌다고 쳐도 대학은 도시에서 나와야 한다는 관념 같은 것들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충북대를 한 예로 들어보면 2003학년도 신입생 3702명 중 청주 출신이 1625명으로 43.9%, 도내 지역 출신이 479명으로 12.9%를 차지했다. 충북대 관계자는 청주 이외 도내 지역 출신들의 입학률이 다른 대학보다 높은 편인데 요즘 타 시·도 출신들이 늘면서 약간 줄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기를 쓰고 좀 더 큰 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려고 하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취업이 가장 큰 이유다. 취업을 할 때는 이른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하는 ‘간판’을 필요로 하는 데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청주 이외의 도내 지역에서는 취업할 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제천출신인 이영일(36·회사원)씨는 “고향에서는 자영업과 공무원, 아니면 농사짓는 길 밖에 없어 적성을 살릴 수가 없다. 아무리 취업이 안된다고 해도 대도시에만 나오면 다양한 직종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 소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이 도전할 만한 게 없다”며 “지방분권 이야기 많이 하는데 충북도 차원에서도 청주 이외 지역을 살리는 길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국가 산업단지나 대학 지방캠퍼스를 유치하고 문화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요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소도시는 도서관·공연장·미술관 등의 예술문화 기반시설도 청주에 비해 턱없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청주시도 타 시·도와 비교해 볼 때 나은 형편은 아니지만 충주 이하 도내 소규모 도시들은 문화인프라 구축이 거의 안 돼 있어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진천 주민 이영화(40·자영업)씨는 “청주에는 주부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공연장, 도서관 등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지만 군 단위에는 군민회관이라는 다목적 공간 외에는 없다. 그래서 청주에 종종 나가 공연이나 전시도 보는 편이다. 이런 부분에서 진천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며 “도시로 집중되는 경향을 해결하려면 지역간 불균형 발전을 해소해야 한다. 도내에서는 청주 이외 지역이 모두 낙후돼 있어 당연히 청주쪽으로만 몰려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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