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건봉사 홍예교(능파교)산영교(山映橋),문수교(文殊橋)극락교(極樂橋),청련교(靑蓮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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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 홍예교(능파교)산영교(山映橋),문수교(文殊橋)극락교(極樂橋),청련교(靑蓮橋)
  • 충청리뷰
  • 승인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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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건설박물관 손광섭 관장의 탐사연재 ‘세상의 통로 ‘橋梁’을 찾아서’

호국 통일의 금강산 건봉사에 이어지는 무지개 다리

 금강산(金剛山) 건봉사(乾鳳寺)는 한국전쟁 후 민통선내에 위치한 관계로 수복 이후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그러나 1989년 1월 20일부터 이러한 민간인 출입 통제선이 완화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물론 모든 국민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금강산 줄기에 자리한 건봉사를 지나 해발 910m의 정상에 오르면 해금강.비로봉.낙타봉 등 금강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자리한 건봉사는 520년(신라 법흥왕)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어서 533년 산내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菴)이 창건되었다.

한편 조선 중기인 1592년(선조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봉사는 의승군(義僧軍)의 본거지가 되었는데, 특히 사명대사(四溟大師)유정(惟政)이 이곳에서 의승군을 일으킨 것은 훗날 역사학자들이 건봉사를 우리나라의 대표적 호국불교 도량으로 주저없이 꼽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사명대사가 건봉사를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은 것은 건봉사가 임진왜란 당시 7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전국 최대의 규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602년에는 선조의 비 의인왕후(懿仁王后,1555~1600)의 유지대로 건봉사에 세금이 면제된 토지5결을 하사하였다.

1707년 능파교(凌波橋, 보물제1336호)를 세웠으며, 이듬해에 비를 세우고 동대암(東臺庵)을 창건하였다. 1723년(경종3) 문규(文奎)가 백운교(白雲橋, 육송정 홍예교, 보물제 1337호)를 가설하였다. 1724년 주지 채보(彩寶)가 구층석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를 봉안하였다. 1726년(영조2) 석가여래치상탑비를 세웠으며 백운교를 중건하고 비를 세웠다.

성상(聖上)의 즉위로부터 31년 되는 갑신년(숙종30년, 1704)본사의 승려 신계(信戒)가 스스로 다리 놓는 일을 떠맡아 여러 인연을 모았는 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令)대로 공사가 진행되어 한 달도 안되어 준비가 끝났다. 그리하여 병술년(1706)7월에 공사를 마쳐 이에 홍교(虹橋)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어찌 물을 수월히 건너게 된 승려들이 혜택을 받는 것에만 그칠 일이겠는가.

원컨대 이런 정신으로 국정의 만분지일이나마 보탬을 드렸으면 한다. 금강산 건봉사의 홍예교에는 산영교(山映橋), 문수교(文殊橋), 극락교(極樂橋), 청련교(靑蓮橋), 백운교(白雲橋) 5개가 있다.

현재 대웅전 입구에 있는 산영교(山映橋)는 건봉사의 홍예교(虹霓橋)중 가장 큰 다리로 2002년 2월에 보물 제 1336호로 지정되었다. 이 홍예교는 처음에는 능파교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으나 1745년에 무너졌다. 이어서 1747년에 복원할 때 산영교(山映橋)라 하였다.

‘능파교’란 고해의 파도를 헤치고 부처의 세계의 해탈로 가는 다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근대 초기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석주에 산영교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산영교라는 이름이 좀 더 널리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능파교는 대웅전지역과 극락전지역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건봉사 홍교 중 가장 아름다운 이 석교는 너비 3m, 길이 14.3m, 중앙부높이 5.4m이며, 중앙에 지름 7.8m, 높이 4m의 아치를 구성하고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날개벽을 구성하고 있어 보존 상태도 좋다. 둥근 모양의 다리는 홍예교(虹霓橋)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무지개를 연상시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홍예의 축조수법은 바닥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좌우로 14개씩 전부 28개의 홍예를 올리고 홍예의 하단에는 각각 길이 267cm, 높이 49cm 및 길이 30cm, 높이 50cm의 장대석 2매를 사용했으며 7단까지는 주로 2매의 장대석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 불이문으로부터 동남쪽 150m지점에 있는 문수교와 건봉사 주차장 입구에 있는 청련교(靑蓮橋), 그리고 절앞을 흐르는 자산천(慈山川)상류와 묘적천(妙寂川)하류인 노루목 고개를 1966년에 막은 관개시설(灌漑施設)인데, 사지와 유적지가 수몰된 송강저수지(松江貯水池)로 지금은 4계절 수면에 비춰지는 자연경관은 가히 선경을 이루고 갈수기(渴水期)에는 수몰된 석교인 무지개 다리 극락교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그 옛날의 건봉사의 일면을 보는듯하다.

 이 가운데 문수교는 불이문 동남쪽 150m지점, 군부대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폭 3.8m, 길이4.7m, 중앙부 높이 1.8m이다. 다리 중앙은 지름 3.4m, 너비 3.64m의 아치를 구성하고, 좌우에는 날개벽을 구성하고 있다. 홍예의 축조수법은 바닥에 지대석을 놓고 이 위에 19개의 홍예석을 좌우에 9개씩 배치하고 있다. 현재 하천에 실려온 모래가 쌓이면서 18매 만이 확인된다.
청련교(靑蓮橋)는 홍예 사이로 전개되는 시야는 끝도 없는 수림(樹林)- 그 밑으로 계류가 흘러내린다.

아치 석교가 퇴락하여 통행이 어렵게 됨에 따라 이곳에 주둔한 군인들이 그 위에 새 다리를 놓은 것 같다. 쓸모가 없어진 옛 다리를 헐어내지 않고 제 위치에 보존한 군인들의 마음씨가 기특하고 고맙다. 홍교는 아치만 남아있을 뿐 그 위에 얹혔던 석축이나 난간은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 나간 듯, 골격만 남은 다리가 또 다른 아취(雅趣)를 풍겨주고 있다.

다리의 기단부분이나 좌우의 석축은 시멘트로 손질이 돼 있으나 홍예만은 원형대로 남아 있는데 모두 27개의 돌로 구성돼 있다. 다리의 높이가 4.3m, 길이 10.8m, 폭 2.5m 한쪽 곁에는 군인들이 만들어 세운 수표(水標)가 눈에 띈다. 개천의 수위를 재기 위해서 30cm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져 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중 휴전직전까지 2년여에 걸쳐 아군 5, 8, 9사단 및 미군 제10군단과 공산군 5개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전투 전적지이며, 이때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44년부터 대웅전, 팔상천, 염불반일원, 종각, 사지등이 각각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전 건봉사는 총642칸과 보림암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이와같이 호국통일의 명절 금강산 건봉사의 아름답고 웅장한 예전 모습을 빠른 시간안에 볼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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