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유지라면서 어쩌면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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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유지라면서 어쩌면 이럴수가
  • 이승동 기자
  • 승인 2009.05.14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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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충북도 간부출신···子-봉사단체 회장 역임
경찰, 소환조사 후 혐의 확정되면 사법처리 可

지난 5일 SBS 긴급출동24시 ‘차고에 사는 노예’편에서 청주시에 사는 지적장애인 할아버지의 비참한 일상이 전파를 탔다. 이 후 지역사회의 파장은 대단하다.

새벽부터 시작돼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노동착취와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5평 남짓한 차고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상한 음식과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차고 안 상황은 사람이 살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      

   
▲ 이름이 한수로만 알려진 60~70세 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잘 나간다는 유지인 이 모씨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등에서 35년간 노예로 살았다. 사진은 SBS 방송 장면 / 사진=SBS방송 캡처.
더 기가 막힐 노릇은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다는 이모씨 부자가 동네 뿐 아니라 지역에서 소문난 갑부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2층 전원주택과 단독주택 한 채를 더 갖고 있으면서도  할아버지의 방은 결국 차고였다.

‘내 이름은 한수’
청주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곽지역 한 동네.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세상구경을 단 한번도 하지 못한 채 35년을 살았다. 나이는 60~70세 사이로 추정. 주민등록도 없는 무적자 상태였다.

‘내 이름은 한수예요’ 할아버지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주민들에게 ‘밥좀 주세요’라고 했던 첫마디에 이은 또 다른 한마디다.

할아버지를 이모씨 집에 소개 시켜줬다는 한 주민은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나무더미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밥좀 달라’ ‘내 이름은 한수’라는 말을 반복했다”며, “모습이 너무 초췌해 동네 유지였던 이씨집에 소개시켜줬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씨와 한수 할아버지의 악연이 시작됐다. 일을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지내왔던 할아버지는 모내기를 하면, 한 달이나 꼬박 걸려 일을 끝마칠 정도로 부지런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또  자동화된 기계 없이 모든 논일을 수작업으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하루 일을 마친 할아버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합판과 스티로폼이 고작인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뉘우며, 피곤을 달래 왔던 것.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할아버지는 제대로 된 따뜻한 음식 한번 먹지 못하며 생활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한 주민은 “이씨가 음식을 주기는 하지만, 한번주면 오랫동안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낡은 전기밥솥이 있긴 하지만, 작동도 안 되거니와, 할아버지가 전기세가 나온다며 한번 밥을 지으면 전기를 끄고 며칠 동안 그 밥을 먹어 왔다. 또 백열등도 켜지 않고 생활해왔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반찬은 오래돼 상한 그대로 식사를 해왔다고 귀띔 했다.

   
▲ 한수할아버지가 생활하던 차고.
지역인사 주인집 큰 아들 ‘실망’
전직 충북도청 간부로 은퇴한 이모씨는 청주의 소문난 부동산 재벌로 알려졌다. 이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고 할아버지 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도 수년째, 보살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 주민 말에 따르면, “이씨의 90세를 넘긴 아버지가 바로 10m앞에 살고 있는데, 밥 한번 챙겨주러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그의 아버지는 손자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직원식당에서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4남매를 둔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현재 재산을 대부분 자식들에게 물려주면서, 큰 아들이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에서 대형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며, 모 은행 명예지점장, 경찰행정발전위원, 건설 회사대표 등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큰 아들 조차, 이런 상황을 방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이들 부자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씨의 아들은 사회 봉사단체인 청원 JC 회장 등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사건에 대해 큰아들 이모씨는 “한옥집에 살 때는 할아버지 방이 있었으나 집을 신축하면서, 차고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라며 “식사를 제공했으나 할아버지가 제 때 치우지 않아 상한 것이지, 상한 음식을 준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할아버지가 화폐 개념을 몰라 돈을 줘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이다”라며 “사회복지시설에도 여러 번 입소시키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거절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교육 가능한 ‘지적장애’
이와 관련해, SBS긴급출동24시 관계자들은 이씨를 장애인 학대와 노동착취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한수’할아버지의 35년 노동착취와 관련, 이씨에게 임금 성격으로8000~9000만원가량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해 법적절차를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관할 동사무소 관계자는 “할아버지가 호적은 물론 주민등록까지 없는 무적자이기 때문에 법원에 취적서류를 제출했다”며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자체 수사에 착수하고 철저한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할아버지를 만나 사실 관계 등을 확인한 뒤 주변인 조사를 거쳐 주인집 이씨를 소환조사할 계획이다”라며 “수사를 거쳐 혐의가 확정되면 이씨를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수’할아버지는 현재 청주 모사회복지재단 노인요양원에 입소해 생활하고 있다. 복지재단 관계자는 “정이 많고 소유욕이 없어, 보는 사람마다 챙겨주고 갖고 있는 것들을 모두 주려고 한다”며 “할아버지가 너무 밝아져서 좋다”고 말했다.

또, 할아버지를 진료 했던 대전 선 병원 정신과 관계자는 “화장실을 사용한 적이 없어 뒷처리 교육과 함께 양치질교육을 했다”며 “할아버지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교육이 가능한 지적장애인 이다. 글씨도 모르지만, 꾸준히 반복하면 더욱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독인터뷰>
“감사합니다, 이곳이 너무 좋아요”
요양원에서 만난 이한수 할아버지

   
35년을 ‘한수’로 불리었던 할아버지는 이제 이한수라는 이름을 가졌다. 동사무소에서 붙여준 성씨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 뒤늦게나마 어엿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 9일 노인요양원에 입소한지 한 달을 갓 넘긴 할아버지를 만났다. 연신 ‘밥줘서 좋아요’‘여기가 좋아요’라는 말을 하며, 어느새 사람들을 좋아하고, 뭐든지 챙겨 주려는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35년동안 ‘최악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새 친한 친구도 생겼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말, 미소는 행복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요양원 관계자는 “할아버지는 과거의 생활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것 같다”며 “이곳생활이 믿기지 않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부르던 노래인지 흥겹게 타령을 부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곳에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며, 간절하게 관계자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마도 다시 그곳에 보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 때문인 듯,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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