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시냐, 특혜시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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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시냐, 특혜시냐, 그것이 문제로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9.11.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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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한 사람이 있다. 배가 무척 고프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 꼭 진수성찬이 아니라도 좋다. 소박하더라도 정성이 깃들고 건강한 밥상이면 된다. 그런데 밥을 먹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다른 걸로 끼니를 때우려 한다. 땜질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쏘시지가 맛있을 것 같아 쏘시지를 하나 사 먹는다.

그런데 막상 먹고 나니 또 허전하다. 그래서 이번엔 포테이토 칩을 하나 샀다. 바삭바삭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다.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충만한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이것저것 먹다보니 칼로리는 엄청 높아 비만의 원인이 되기는 하되, 막상 섭취해야 할 영양분은 고르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이중의 덫’에 빠질 수 있다.

여야가 모두 합의해 세종시라 이름까지 지어 놓은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시)를 통해 수도권의 중앙 집중도 완화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도 이루겠다고 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세종시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아니지만 이를 원안대로 추진하면 그 상징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나라 살림살이도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하려고 했던 건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한 것으로 ‘보상’만 하고자 하니 한편으로는 비만, 다른 편으로는 영양실조라는 ‘이중의 덫’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 사이에 피 같은 국민들의 세금만 낭비된다. 한강투석이 아니라 한강투전(漢江投錢)이다.

행복시나 4대강 사업이나 둘 다 비슷하게 22조원 이상이 든다. 하자고 하는 행복시는 제쳐 두고, 하지 말라 하는 4대강 사업엔 올인하니 참 딱하다. 말이 1조니 10조니 하는 것이지, 도대체 1조 원이 얼마나 큰 돈인가? 한 달에 1천만 원, 일 년에 약 1억을 버는 (대부분의 사람에겐 불가능한) 사람이 단군 할아버지처럼 약 5000년 동안 살아서 하나도 안 쓰고 모아야 5000억 원이다. 이런 불가능한 단군 노인이 두 분 계셔야 1조 원이다. 22조 규모란, 이 불가능한 단군이 45명 합친 돈이다! 그렇게 강에 돈을 던져 ‘깜짝 놀랄’ 일을 벌인다 해도 비만은 될지언정 욕구 충족이나 영양 균형은 달성되기 어렵다.

‘비만 속의 영양실조’, 바로 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들을 상징한다. 원래의 자연스런 욕구를 충족하려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한 것으로 보상함으로써 대리 만족하려 하니 재벌에게 땅값이나 세금 등 온갖 특혜를 주려 한다.

롯데에 이어 삼성전기 같은 재벌 계열사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하는 이유다. 이것이면 되겠느냐, 저것이면 안 되겠느냐, 하는 식으로 겉보기에 그럴 듯한 것만 갖다 붙이니, 갈수록 ‘종합선물세트’만 커진다. ‘특혜시’ 논란이 이는 까닭이다.

그러나 막상 그 종합선물세트 속의 과자를 다 먹는다 해도 내면의 만족감은 오지 않고 오히려 영양 불균형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진다. 행정 기관들이 원안대로 온다 해도 고속철로 말미암아 주거나 교육 부분이 여전히 서울 집중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그래서 그 부분을 더욱 신경 써야 할 판국인데, 행정기관은 쏙 빼고 대학과 기업만 유치하려 하니 결국은 학교와 공장에게 특혜를 주어 땜질 처방만 하려는 격이다.

영양실조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편, 세종시로 이전하지 않는 다른 재벌들이나 중소기업, 외국 기업들은 ‘역차별’이라는 둥, 자기들에게도 그런 혜택을 달라는 둥, 영양실조로 인한 부작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이것이 사태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겸허하게 ‘섬김의 리더십’으로 돌아가자. 건설자본이 아닌 풀뿌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정말 수도권 과잉 비만도 해결하고 지방의 아사 상태도 해결하면서 누가 어디에 살건 삶의 보람을 누리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토론하자.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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