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는 없다는데 '그래도 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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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는 없다는데 '그래도 전관예우'
  • 경철수
  • 승인 2011.05.1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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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가도 2∼3년은 간다"…청주지역 개인·로펌 5파전
관련법 국무회의 통과…처벌조항 없어 보완 필요

   
▲ 황성주(부장판사출신)·이광형(부장검사출신) 변호사
지난해 10월 중순께 청주지법은 농가 부당 보조금 수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도내 한 농민단체 간부 이모씨(58)에게 벌금 2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씨는 수행실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을 소개 받았다. 전직 경찰인 변호사 사무실 사무국장은 이 씨 일행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담당 판사와 변호사와의 학연을 강조했다. 담당 판사가 대학을 다닐 때에 공부도 가르치곤 했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얼굴을 잠시 비치고 자리를 비운 뒤 곧바로 이어진 변호사 선임계약. 착수금으로 2000만원을 요구했지만 '돈이 없다'고 하자 1500만원을 차명계좌로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씨는 탈세를 의심했지만 착수금을 깎아 준 게 고마워 믿음이 갔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함께 기소된 농가들 변론 비용으로 1300만원을 요구하더니 판결 선고 열흘을 남겨 놓고는 '지금 상태라면 법정구속 내지는 집행유예'라며 담당 판사와 더 친한 변호사 재선임료로 3000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착수금 1500만원으로 시작된 변호사 선임 비용은 1300만원과 3000만원을 합쳐 58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 씨는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선임 변호사를 찾아가 착수금 1500만원, 공탁금 500만원, 성공보수 2000만원을 빼고 나머지 1800만원을 되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벌금형이 나왔으니 오히려 성공보수 2000만원을 더 받아야 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씨의 사례처럼 사건 의뢰인의 기대심리를 악용한 변호사 수임료 바가지 및 탈세, 사건수임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일명 '전관예우 금지법(개정 변호사법)'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관예우 금지법은 판검사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공무원 등이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퇴직 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 검찰청, 군사법원,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등의 국가기관에서 진행되는 민·형사 및 행정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일단 관련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대법원과 법무부가 '법 시행 전 사표 수리 불가' 방침을 내세우면서 개인적인 이유로 사표를 낸 판검사의 경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소지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정사무실 사건쏠림 방지 기대"
반면에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충북지방변호사회는 반기는 분위기다. 박충규(47·정동법무법인·연수원 21기) 충북지방변호사회장은 "특정 변호사 사무실의 사건수임 쏠림현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업계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관련법 정비는 바람직하다"면 "법률 수요가 한정돼 있는 시장에서 특정 변호사 사무실의 수임사건 쏠림현상은 다른 변호사 사무실의 경영난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6년 지역변호사 1인당 사건수임은 민사 1.6건에서 1건, 형사 5.7건에서 4건으로 감소한 대신 등록 변호사 수는 77명에서 91명으로 14명이나 증가했다.

또 도내의 경우 시장규모에 비해 기형적으로 로펌 형태의 합동 법률사무소가 유달리 많아 무려 10여개 가 성업 중이다. 그 중에서도 전관 변호사 사무실의 사건 수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2월 청주지법에서 법복을 벗은 황성주(52·연수원 18기·부장판사) 변호사를 비롯해 이광형(50·연수원 17기·부장검사) 변호사, 주성, 청주로, 청남, 청풍로펌 등이 수임사건이 많은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먼저 법원장 출신의 이보헌 변호사가 일찌감치 포진했던 주성 법무법인은 오해진(판사출신) ·김찬학(검사출신) 변호사에 이어 석동규(연수원 22기·부장판사) 변호사까지 영입하면서 그야말로 판검사 출신 전관들의 집합소가 됐다. 한 때 이광형 변호사가 몸담아 화제가 됐던 청남 법무법인은 최용현(연수원 30기·검사출신) 변호사, 군법무관 출신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재풍 대표 변호사가 이끌고 있는 청주로는 오원근(검사출신) 변호사가 몸담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울 수도권이나 가까운 대전의 경우 빠르면 6개월에서 1년이면 끝나는 전관예우가 도내에서는 2∼3년은 간다고 했다. 그래서 가까운 대전만 해도 영입 연봉으로 5∼10억원을 부르기도 한다는 것. 실제 지역에서도 이 같은 제안을 받은 전관도 있지만 특정 로펌이 비대화 되는 것을 우려한 후배 법조인들의 만류와 제대로 된 로펌을 만들어 보자는 개인적인 희망이 합쳐져 현실화 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체는 없고 의뢰인 기대심리 커"
이광형 변호사는 "전관은 실체는 없고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고 싶어 하는 사건의뢰인(피의자·피고소인)들의 기대심리에 있는 것이다"며 "형사 사건의 경우 경찰, 검찰, 법원의 수많은 결재 라인을 거치게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안면을 통해 사건을 은폐하거나 형량을 감경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도내에서는 전관예우를 바라고 특별히 부탁할 사건들이 연간 1∼2건 있을까 말까이다. 여기에 피의자 인권을 고려한 불구속 재판이 늘고, 경제 여건 상 국선 변호사 선임율도 높은 상황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조직에 몸담으며 검증된 실력을 인정해 찾는 사건 의뢰인이 더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성주 변호사는 "20여 년 간 한 조직에 몸담으며 쌓은 실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더 클 것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교도소(미결수 구치소)에서 전관을 소개받는 기대심리가 아직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형사 사건에 비해 민사 사건을 더 많이 맡는 입장에서 전관 덕을 봤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전관을 바랐다면 지인이 많은 수도권을 선호했을 것이다. 도내에 개업을 한 것은 대전이나 서울 등 수도권 로펌을 선호하는 의뢰인들을 잡아 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세(稅) 유출을 막아 지역에 기여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비롯한 금융권은 대체로 서울 본사에서 고문변호사를 두고 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청주로 유재풍 대표변호사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저해하는 위헌의 소지뿐만 아니라 로펌의 경우 전관 수임 사건을 다른 변호사가 변론을 맡는다거나 등록지를 가까운 자치단체에 두고 계속 사건을 수임해 변론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또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즉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보다 현실적인 법 개정 및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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