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익 「귀농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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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익 「귀농 일기 1」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7.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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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무 詩人의 詩 읽는 기쁨 (33)

백하산 발치에
오두막집 한 채 지어
빛을 불러 모아 차일을 치고
바람을 불러 앉혀
막걸리를 마신다

동산 높 낮은 무덤들
여전히 양달쪽에서 지켜보시고
가시덤불 사이를 빠져나가며
잘 돌아왔다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이름 모를 새떼들이여

삼십년간 찌들러 온
타향살이의 찌꺼기가
아직도 구석구석에 남아
나는 무엇으로
앞산의 조선 소나무가 되랴
바람 이는 삭정이에 흰 달이 되랴

- 전태익 「귀농 일기 1」(시집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에서)

그림=박경수
평생 다니던 직장을 마감하고, 말년을 농경사회로의 귀농을 선택하는 일은 커다란 결심이 따릅니다. 문명과의 괴리로 인한 불편한 일상, 사회적 교류의 일탈에서 오는 관계의 상실감, 아직 덜 끝난 자식 교육 등등.

그러나 간절히 꿈꾸어온 바를 실천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누리는 참된 생의 기쁨이지요. 우리가 멈칫거리고 주저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인생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과,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지금 만나는 충만한 느낌만이 진정한 내 인생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불확실한 세계일 따름이지요.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결심은 한낮 어제 있었던 오류의 잔상에 불과할 뿐이고요. 시인은 삼십년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몸과 마음에 두루 이로운 고요와 평화를 구했습니다.

숲과 새들 사이에 오두막을 짓고, 빛과 바람을 불러 함께 취합니다. 이 순간 시인은 귀농의 눈부심 속에서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헛된 명리를 벗어던지고 존재의 갱신을 이룩합니다. 돌연 한가한 필부의 일상이 빛나기 시작하지요. 앞산 조선소나무의 깊고 서늘한 자태를 보며 용렬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바람 이는 삭정이에 흰 달을 보며 흠집 많은 생애의 괴로움을 씻어버립니다.

삿됨을 가라앉히고 마음에 본성으로의 평화와 안일을 구함으로, 청빈의 즐거움과 더불어 존귀한 생의 위안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물욕과 안락을 포기한 곳에 더 큰 안락이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귀농’, 그 자발적 단순함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건강한 대지 위에 맑은 영혼을 지닌 새로운 생명으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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