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무의 ‘역사의 오솔길’ ]송두리의 생거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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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의 ‘역사의 오솔길’ ]송두리의 생거진천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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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계곡에서 숨어 있다가 순식간에 들녘으로 들이닥친다. 1백년 만의 3월 폭설도 봄볕을 이기지 못해 스르르 녹고 언 땅에서는 새 봄의 전령들이 두터운 외투를 헤집고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중부고속도로에서 진천 인터체인지를 막 진입하여 한 마장쯤 돌아서면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출발점인 송두리 구석기 유적이 4만년의 베일을 벗고 하품을 한다.

산간에서 구릉지대로 이어지는 진천지역은 소백, 차령산맥의 실개천이 모여 비단물결, 금강(錦江)을 이루었고 그 비단강의 상류인 미호천은 일대 유역에 기름진 문전옥답을 일구어 놓았으니 진천은 대대로 물 걱정, 양식걱정이 없는 풍요의 고장이다.

송두리 유적은 진천 IC 확포장 공사 관계로 구제발굴의 성격을 띠면서 지난 2003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백제시대의 집터 등 역사시대 유적이 발굴조사 되었는데 지층이 수상쩍어 트렌치(시굴구덩이)를 넣어본 결과 구석기 문화층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구석기 문화층이란 제4기에 형성된 홍적토(洪積土) 고토양층을 일컬음인데 이 토양층은 흙빛이 붉고 토양쐐기가 발달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중원문화재연구원(조사단장: 이융조)이 최근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석영(차돌), 규암 등을 돌감(재료)으로 한 주먹도끼 3점, 사냥돌 20여점, 주먹대패, 긁개, 몸돌 등 8백여점의 석기와 물푸레나무 도토리 열매 등이 나왔다.

 유물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먹도끼와 사냥돌. 1점의 주먹도끼는 규암을 이용한 것으로 외날로 제작되었고 나머지 2점은 차돌로 만든 주먹도끼로 양날 형태를 띠었는데 양날은 외날보다 발달된 형식이다.

사냥돌은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돌을 다듬어 사냥을 하던 수렵도구. 여러 개의 사냥돌을 줄에 엮어 던지면 짐승 몸에 감기고 움직이기가 둔할 때 다가가 사냥을 하던 방식이다. 대개 1개 유적에서는 잘 해야 2~3점의 사냥돌이 출토되는데 이곳에서는 무려 20여점이 나왔다.

이는 구릉지대에서 수렵행위가 매우 활발했다는 증거다.  사냥돌은 여러 번의 손질로 매우 잘 다듬어져 있다. 중기 구석기시대 다른 석기의 한번 떼기 거친 수법과는 좀 다르다. 이곳의 절대연대는 서울대 물리학과 김종찬 교수에 의해 재본 결과 4만3천1백년이라는 값을 얻었다. 퇴적층의 유기물 속에 존재하는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이다.

진천지역에는 생거진천과 더불어 연관된 설화가 여러 편 전해진다. 개가한 여인의 두 아들이 용인과 진천에서 서로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경쟁 효심에 현감이 살아서는 진천에 모시고(생거진천), 죽어서는 용인에 모시라는(사거용인)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설화보다는 자연적인 조건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드는데 토대가 되었다는 설이 더 유력한 것 같고 그 실증적 자료들이 송두리, 장관리 선사유적과 삼룡리 백제가마터, 석장리 제철유지 등지서 잇따라 찾아지고 있다. 

본지는 이번호부터 매주 임병무 전 중부매일 편집부국장의 칼럼 ‘역사의 오솔길’을 싣는다. 역사·문화 분야에서 오랫동안 취재하고 글을 써온 그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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