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아줌마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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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아줌마들의 힘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3.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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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
“아줌마, ○○초등학교가 어디에요?” 30대로 보이는 젊은 엄마가 내게 묻는다.
“저도 여기 안 살아서 잘 몰라요.” 내 말투가 그리 친절하지 않다.
잠시 들었던 불쾌감이 ‘아줌마’라는 호칭에 있음을 발견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데도 난 참 철이 없다.

아직까지도 아줌마 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두꺼운(!) 얼굴과 떠나갈 듯한 웃음소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관심, 바퀴벌레도 때려잡는 담대함, 필요에 따라 솟아나는 엄청난 괴력(?)이 떠오른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줌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아줌마들이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크고 주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짱가’처럼, 혹은 영화 속 ‘홍반장’처럼 아줌마들은, 우리 엄마들은 일밖에 모르는 남편 대신 집안일은 물론, 동네 대소사까지 챙겨야 했다.

나 역시 아줌마가 되어 보니, 구석구석 많은 것들이 보였다. 당연히 오지랖도 넓어졌다. 그러다 내 나름대로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지자체마다 홈페이지가 잘 만들어져 있지 않나?’ 시민 의견을 받는 게시판을 활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 민원. 우리 동네 지하도가 너무 지저분했다. 처음 지하도를 만들 때와 달리, 지상에 횡단보도가 설치돼 지하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이용할 때면 어른인 나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온 벽면, 바닥에 낙서와 오물이 넘쳤고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그래서 ‘깨끗한 도시라면서 이거 너무한다. 청소 좀 했으면 좋겠다’고 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혹시나 했는데, 얼마 후 진짜로 지하도가 깨끗해져 있었다. ‘깨진 유리창’을 갈아끼우는 것처럼, 우리 동네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례.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 입구에 제법 보기좋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보도블록 사이에 일정 간격으로. 그런데 유독 앞쪽 나무들이 자꾸만 죽어갔다. 시들면 뽑고 다시 심고, 또 심고…. 나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조건인 듯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나무를 심을 만큼 도서관 예산이 많으냐고 민원을 올렸다.

담당자 왈, 나무는 기증받기 때문에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아무 문제가 없다더니 갑자기 그 도서관이 공사를 시작했다. 기존에 나무 심었던 자리에 대형 화분을 설치해 흙을 돋우고 이전보다 작은 나무로 바꿔 심는 게 아닌가. 그 후론 나무가 시드는 일이 없었다.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 번째 민원. 우리 동네 큰길가에 도시가스 공사인지 수도공사인지, 차도를 파헤치는 공사가 있었다. 며칠 만에 뚝딱 끝나는가 싶었는데 마감공사가 영 엉망이었다. 설마 그렇게 마무리하진 않겠지 했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래서 역시 시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누가 공사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조치하도록 시에서 확인해 달라.’ 며칠 지나지 않아 움푹 패인 도로가 바로 메워졌다. 그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난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2013년을 사는 아줌마들은 주위에 눈 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취업에 나선 이들도 많고, 자칭 ‘프리랜서’들은 나름대로 끼어야 할 모임이 많다. 세상이 변해도 아줌마들의 시선, 아줌마들의 오지랖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동네도, 교육도, 정치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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