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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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이야기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4.1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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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각 서원대 교수

강도 중에 혈색이 좋고 살이 통통하게 찐 강도가 더 무서울까, 혈색이 안 좋고 비쩍 마른 강도가 더 무서울까? 이게 무슨 난센스 퀴즈가 아니라면 당연히 후자가 더 무섭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길 가다가 무시무시한 흉기를 든 비쩍 마른 강도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게 우월한 힘이 있다고 그걸 믿고서 강도의 흉기를 탈취하려 들거나 강도를 제압하려 든다면, 비록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다칠 수 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른다. 물론 강도는 십중팔구 죽거나 적어도 치명상을 입겠지만. 그러므로 이 방법은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없다. 마치 에어백과 안전벨트 믿고 과속 난폭 운전해서는 안 되듯이 말이다.

이보다는 강도와 타협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강도와 내가 추구하는 제일의 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는 있다. 강도는 나의 돈이나 기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지 내 목숨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반면에 나한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내 목숨이지 돈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타협은 물론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리고 번번이 이런 식으로 넘어간다면 그 강도는 재미를 들여 더 자주 강도짓 하러 나설지 모른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을까?

압도적인 힘으로 강도를 순식간에 제거해 버리면 깔끔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건 너무 잔인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강도 스스로 흉기를 버리고 나아가 강도짓을 그만 두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게 근본적인 대책이요 상지상책이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왜 강도짓에 나섰는가를 알아야 한다.

오죽 딱하면 저렇게 나올까? 도대체 그 딱한 사정이 무엇일까? 이걸 제대로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사정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줌으로써 강도짓을 할 필요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본의든 본의 아니든 그 사람의 절박함을 더욱 절박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한번 따져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쯤 진전되면 이 강도 얘기가 어떤 상황을 빗댄 것인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재래식 군사력은 접어두고라도 핵이라고 하는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체인 미사일을 가진 북한이 우리를 향해서 연일 공갈협박을 가해 오고 있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강도와 달리 북한의 경우 그 딱한 사정과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대강은 정확한 속사정과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 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함께 감안한다면 일방적 퍼주기라는 오명 속에 지난 5년 동안 폐기되었던 햇볕정책이, 비록 부분적인 문제점도 안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기본 방향 면에서 옳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지금은 과거의 햇볕정책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소위 일방적 퍼주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당국의 궁색한 변명처럼 ‘느슨한 상호주의’가 아니라 전쟁위험을 줄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라는 의미에서 ‘확장된 국방비’ 개념으로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저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 무엇인지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또 그것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일일 것이다.

당장은 이것이 어렵다면 저들의 절박함을 더욱 부채질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언동은 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개성공단이 저들의 달러 박스니, 인질구출이니 하는 언동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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