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을’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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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을’이 보이는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5.1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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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

“오죽하면 ‘GAP’이라 적힌 옷이라고 사 입고 ‘갑’ 행세를 하고 싶겠나?”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갑을(甲乙) 관계’로 굳어진 불공정한 거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은 대기업과 대리점주 간의 관계가 바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갑을 관계’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여기에 ‘아버지뻘’이라는 사회 통념은 무력했다.

남양유업 전·현직 대리점주로 구성된 대리점피해자협의회가 떡값과 불법 리베이트 근절, 물품 밀어내기를 고발하며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시위를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말이다. 남양유업 측은 이들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즉각 맞대응했고, 피해자들의 농성도 장기화됐다. 만약 음성파일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남양유업 문제는 수많은 ‘을’들의 외침이 묻히듯 그렇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남양유업은 그간 공격적 영업, 노이즈 전략을 구사하며 승승가도를 달려 왔다. 사회적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듯, 음성파일이 공개된 지 6일 후에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상생 방안 역시 면피용이었다. 최근 진행된 검찰 수사에서는 이마저도 뒤집었다고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들은 대리점 업주들을 설득해 승낙을 받은 뒤 제품을 팔았을 뿐, ‘전산 조작’이나 ‘밀어내기’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어차피 여론은 시들해질 것(!)이고, 형사재판 결과가 대리점주들의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렇듯, 남양유업을 비롯한 세상의 ‘갑’들은 단순히 당사자 간 계약에서만 주도권을 잡는 것이 아니다. 돈의 위력은 사법부도 쥐락펴락하고,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길들인다. 수많은 ‘을’들은 빽도 없고, 힘도 없고, 법도 없기에 불공정한 게임인 줄 알면서도 유일한 ‘밥줄’이기에 참아 왔다. 어쩌다 홀로 나선 이들 역시 맨 땅에 헤딩하듯, 계란으로 바위치듯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충북경실련은 남양유업과 같은 관행이 충북지역에서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전화 043-262-9898, 이메일 ok@ok.or.kr).

며칠 전 제보해 온 남양유업 전 대리점주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에 치를 떨었다. 1상자를 주문했는데 5상자를 갖다주는가 하면, 발주하지도 않아도 갖다 놓으니까 주문 자체가 필요 없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도 본사에서 일절 반품을 해주지 않으니까 유통기한 지난 제품들을 가족이나 친지들이 처리하느라 남양유업 제품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한번은, 홧김에 밀어내기로 받은 제품을 차에 싣고 가서 남양유업 지점에 가서 버리고 온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이뿐만 아니라 명절 때 영업사원이 떡값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자사 브랜드를 홍보해 주는 차량 도색비까지 대리점주가 부담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제보자는 지난해 남양유업 대리점을 정리하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동안 밀어내기로 받은 물량 때문에 애꿎은 부인한테 화풀이를 하는가 하면, 주름살과 흰머리만 늘었다고 고백했다. 본인은 그나마 다른 회사 대리점을 겸하고 있어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남양유업의 횡포는 심각하다고, 이참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국가경제를 위해, 혹은 경제활동 위축을 우려하며 대기업의 온갖 불법과 불공정 거래에 눈감아 왔다. 대기업의 공정거래 위반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0년간 6만여 건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했지만, 0.9%인 529건만 검찰에 고발했다. ‘손톱 밑 가시’가 문제가 아니다. 재벌 대기업이 수많은 ‘을’의 숨통을 조여 왔다.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등 경제민주화법부터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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