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상당경찰서 정보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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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상당경찰서 정보과입니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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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 옥천성당 신부

누구나 입신양명을 꿈꿉니다. 어느 퇴직공무원의 탄식이 생각납니다. 승진을 위해서 애면글면 버둥거렸지만 올라보기는커녕 건강만 해쳤다고 했습니다.

암수술을 받고 돌아와 지친 목소리로 그런 후회를 털어놓더군요. 오르고 오르면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머물다 내려오는 ‘의자’가 사람이 이뤄야할 진짜 입신, 참된 양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올라야 할 곳은 저 높은 하늘입니다.

요즘은 여간해서 천당, 지옥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보지도 않고 죽음 이후를 논하는 게 가당찮다고 여겨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는 말에 담겼던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천당을 비웃고 지옥마저 무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좋지만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간의 탐욕과 끔찍한 폭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옛 어른들의 천당, 지옥은 특정 신앙의 반영이라기보다 오순도순 공생공락하며 살아가자는 오랜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천당은 하느님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과 함께 살고 부처님과 함께 사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천당에 가나요? 지금 여기서 하느님과 함께 살고, 부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다음 생에서도 그렇게 살게 될 겁니다.

또 천당은 여럿이 함께 사는 곳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공감과 연민의 정신으로 이웃과 두루 어울리며 사는 사람은 죽어서도 그렇게 살 겁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천당에서 우리는 삼라만상의 주인과 함께 살고 이웃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래서 늘 신나고 즐거울 겁니다.

천당이 즐거움을 누리는 나라라면 지옥은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나라입니다. 지옥의 괴로움이란 다름 아닌 홀로 지내는 외로움입니다. 하늘의 주인도, 이웃도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서 살던 사람은 죽어서도 그렇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평생 저만 알고 이기적으로 살았으므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그 영원한 외로움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옥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시무시한 지옥이야 슬그머니 접어두더라도 천당만큼은 언제나 사람들 가슴에 푸르게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서럽고 답답한 세상이라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세상’ 혹은 ‘새로운 세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살을 베어서라도, 피를 쏟아서라도” 사람이 사는 미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사이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걱정하다가도 번번이 “이게 인간일까?”하는 물음에 닿고 맙니다. 거짓말을 더 많은 거짓말로 덮고, 불법을 또 다른 불법으로 감추려는 소행들을 보노라니 애처롭습니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쏠린 시선들을 흩어버리느라 북방한계선 논란으로 더위에 지친 민심을 북북 찢어대는 고약한 술수에 그만 지치고 말았습니다. 하늘을 무섭게, 이웃을 자비롭게 대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얼마 전 경찰서로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월요일 서울 대한문 기도회에 참석하실 예정입니까?” 남의 행선지를 캐묻는 막돼먹은 결례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청주상당경찰서에서 또 한 번은 옥천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유신시절의 미행, 도청, 감시에 비하면 아주 점잖은 일이지만 어영부영 그 시대로 돌아가고 있구나 싶어 아찔하였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시킨다고 고분고분 움직이는 그 마음들이 더 슬펐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부터 서둘러 단속해야겠습니다.

“푹 삶아지는 게 삶의 전부일지라도, 찬물에 똑바로 정신 가다듬고는 처음 국수틀에서 나올 때처럼 꼿꼿해야 한다. 국수걸대 회초리에서 몸 말릴 때처럼 입신양명(立身揚名), 끝내는 승천해야 한다. 가장 가난한 입천장을 향해 후룩후룩 날아올라야 한다.”(이정록)

국수만큼의 꼿꼿함이라도 배우려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대낮의 촛불로 삼아 다 같이 직립해보는 칠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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