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를 죽이면 ‘임꺽정’은 살까?
상태바
홍명희를 죽이면 ‘임꺽정’은 살까?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4.10.10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장편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홍명희 문학제’. 올해 19회째를 맞아 세계적인 북 페스티벌인 ‘파주 북소리 축제’가 열리고 있는 파주에서 개최된다.

충북작가회의는 “공동주최측인 사계절출판사의 제의로 수년 전부터 계획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눈엔 작가의 고향인 괴산에서 밀려나 청주에서 머물다 이젠 행사주관 출판사가 자리잡은 곳으로 내쫓긴 모양새가 됐다. 우리 지역작가의 문학제가 20년이 다 되도록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홍명희 문학제’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보훈단체 반발 때문이다. 당초 홍명희문학제는 1996년 소설 ‘임꺽정’을 출간한 사계절출판사가 괴산군문학회에 공동주관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충북작가회의가 뜻을 함께 해 청주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시작했다. 이후 작가의 고향이자 생가가 남아있는 괴산에서 개최를 시도했지만 보훈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1998년 문학비를 세웠으나 보훈단체가 문구에 반발하면서 동판이 철거됐다가 2000년 일부 수정해 다시 부착하는 곤욕을 치렀다. 홍명희가 월북해 북한 정권의 부수상으로 있을 때 6·25라는 민족상잔이 있었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8회)부터 2006년(11회)까지 4년 연속 괴산에서 본행사가 열렸다. 괴산군도 임꺽정을 지역특산품인 고추를 알리는 상징 캐릭터로 쓰는등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홍명희 문학제에 대한 보수단체의 시비가 또다시 불거졌다. 괴산군은 ‘벽초 신인문학상’을 제정해 관련 예산 2500만원을 편성했으나 보훈단체 반대를 이유로 군의회가 전액삭감시켰다.

홍명희문학제 지원 예산 1000만원도 역시 날려버렸다. 할수 없이 다시 청주로 옮겼다가 2012년(17회)과 2013년(18회) 괴산에서 문학제 본행사가 열리게 됐다. 특히 작년 18회 때는 보훈단체와 주최측이 ▲홍명희가 북한의 부수상으로 6·25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제에서 공표 ▲문학제에서 6·25전쟁 전사자에 대해 의례 ▲이후 홍명희문학제를 괴산에서 개최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충북작가회의는 내년 20회 행사는 괴산이든 청주든 “충북에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남 통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곡가 윤이상 지우기 행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윤이상국제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제’로 이름이 바뀌었고 시민성금까지 합쳐 만든 ‘윤이상국제음악당’은 ‘통영국제음악당’이 됐다.

‘윤이상기념공원’으로 계획된 공원은 ‘도천테마공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안에 만들어 놓은 윤이상기념관도 안내판 하나 없이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복원을 약속했던 윤이상 생가터는 도로 신설계획이 진행된다면 차가운 아스팔트 밑으로 묻혀버릴 위기에 처했다.

독일 방송사가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으로 선정한 예술가가 고국에서 퇴출당할 처지가 됐다. 새누리당 단체장 취임 이후 보수단체들이 그의 친북 행적을 다시 문제삼아 작심하고 '밀어내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홍명희 문학제’도 조만간 ‘임꺽정 문학제’로 명칭을 바꿔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작곡가 없는 ‘음악제’와 작가 없는 ‘문학제’는 한 편의 코미디다. 분단 한국의 현실에 기댄 이런 코미디가 남북통일이란 미래에 어떻게 작용 할까.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의 수뇌부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고 무사히(?) 돌아갔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