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도 두 발을 세운, 무명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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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도 두 발을 세운, 무명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1.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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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5호 보은 속리산 법주사 쌍사자석등-

통일신라 쌍사자석등 3기 중 연대 빠르고 조형미 빼어나
속리에서 여울져 간 ‘사자의 호통’ 메아리는 어디로?

충북의 국보 코드 읽기
본 연재는 충북의 시 전문계간지 <딩아돌하>에 ‘충북의 국보’란 제목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전재를 허락해 주신 (사)딩아돌하 문예원과 원고와 사진을 다시 정리해 보내주신 필자 김덕근 시인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 시인은 연재 글의 성격을 ‘장소와 문학으로 관계를 엮는 충북의 국보 코드 읽기’로 규정했습니다. 내용 중 부제목·중간제목은 편집자가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밝혀둡니다.

김덕근 ‘충북작가’ 편집장

   
▲ 조선고적도보의 쌍사자석등, 오른편에 원통보전이 보인다.

하늘도 붉고 산도 붉은 속리산의 가을은 불길에 싸인 것 같습니다. 일찍이 함허스님은 ‘물이 맑아 붉은 빛 서로 다투고/온산엔 물든 잎들 소나무 가지에 기대었네’라고 속리산의 가을 풍경을 노래하기도 했지요. 법이 머무는 절 법주사로 가는 길. 만추의 홍엽을 그냥두지 않았던 거지요. 가을이 되면 속리산은 단풍을 타고 속세의 사람들에게 ‘속리’하라고 재촉하며 이름값을 하곤 합니다.

속리산의 자궁에는 천년고찰 법주사가 들어있습니다. 법주사는 국보와 보물이 많은 사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석등이 많은 도량이기도 합니다. 무려 4기나 되지요. 그중에서도 법주사하면 팔상전과 더불어 사람들은 쌍사자석등을 듭니다. 4기의 석등을 다보지 못했다면 법주사 구경을 제대로 못한 셈입니다.

흔히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라고도 하지만 석등의 나라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석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려 280기의 석등이 남아있으니까요. 주변국가나 불교의 발생지에서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을 보더라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이룩한 고유의 불교예술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석등은 사찰에서 불을 밝히는 도구만은 아닙니다. 넓은 도량을 석등으로 환하게 비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석등은 또한 아무데나 제 마음대로 서있지 않습니다. 절집에서는 석등을 불등(佛燈) 헌등(獻燈)이라고 하였는데, 법주사 사적에 석사자광명대(石獅子光明臺)란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광명대’라고도 부른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어둠을 무명(無明)이라 하지요. 무명의 바다에서는 막막한 항해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있을까요. 무명의 바다를 밝혀주는 등대가 석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 안에 있는 광명을 보는 행위가 바로 자성(自性)으로 어두움을 소멸시키는 거지요. 등불은 진리이자 바로 부처를 즉 깨달은 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 불상이나 석탑에 못지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공양에서도 등공양을 으뜸으로 삼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 사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입니다. 통일신라에 들어서는 일상 생활용품까지 사자의 얼굴이 들어왔을 정도로 친밀히 지내기도 했구요. 백수의 왕인 사자는 절대적인 힘과 신성함 그리고 위엄을 나타내어 부처를 대신하는 말입니다. 절집에서는 사자를 통하여 신성함과 숭배·존경의 마음을 담아 여러 조형물을 받들고 있는 거지요. 석등의 불은 불(佛)이기도 하지요. 불을 밝혀 진리의 광명을 선사하는 석등은 4개의 창으로 피안의 세계로 중생들을 인도하는 겁니다.

   
▲ 서쪽에서 바라본 쌍사자석등.

좌상 아닌 입상, 신라인의 신안특허(?)

석등은 밑으로부터 기단부의 무게를 지면에 분산시키는 하대석, 상승감을 높여주는 기둥돌인 간주석과 상대석 화사부의 화사석 지붕돌인 옥개석과 상륜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법주사의 경내에 있는 석등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국보 5호인 쌍사자 석등입니다.

석등의 꼴에서 본다면 쌍사자석등은 일반형 석등이 아닙니다. 신라석공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단조로운 팔각 기둥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자란 녀석을 등장시켰던 거지요. 지금으로 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발상의 전환이었던 거지요. 전형을 깨트리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쌍사자석등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중흥사지 쌍사자 석등 모두 3기가 남아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연대가 가장 빠르고 조형미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에 있습니다. 금강문에서 시작되는 일자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높은 탑과 전각 사이에서 석등은 등화시설이라는 기능적 측면으로도 볼 수 있지만,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는 등불은 여래장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천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법주사에 석등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석등의 부재들이 가람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것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퍼즐 맞추듯 마음의 눈을 열어 등불을 켜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다시 쌍사자 석등으로 돌아가 보지요. 석등의 키는 3m가 조금 넘습니다. 안타깝지만 보호각에 가려 전신을 보려면 가까이 가지 않고는 볼 수 없고, 주변경관과도 그리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웅보전 앞의 사천왕석등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요. 보호각이 없는 쌍사자 석등의 지난 사진들이 바로 본래의 모습이지요. 과문한 탓이지만 지붕이 있는 석등을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해 전 보호각과 함께 서있기에 석등의 오랜 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쌍자자 석등은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화사석을 두 팔과 입으로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보통 사자의 모습은 좌상인데 비해 입상의 모습은 불편한 자세임에 틀림없습니다. 석등의 수직 지향적 높이가 수미산까지 닿아있다고 상상한다면 직립의 사자상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주석을 대신한 사자 외에 다른 동물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데요, 석등이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에 잘 부합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삼불 김원룡선생은 쌍사자 석등의 예술성을 평가하면서, 신라인의 발명이고 신라의 영토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신라인의 신안특허라고 까지 했지요. 신라의 석공은 어떤 마음을 갖고 사자상을 다듬었을까요. 사자의 골격과 근육은 석공이 내리치는 정과 망치에 굵은 팔뚝과 땀과 영혼이 자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망치소리가 속리산을 쩡쩡 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석수장이는 조형미를 통해 그의 서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쌍사자석등은 간주석을 치환한 쌍사자를 빼곤 석등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은 쌍사자로 모아집니다. 참 옹골찬 모습이지요. 땅을 딛고 서있는 뒷다리의 근육이 장난이 아닙니다. 석등을 받치고 있는 앞다리도 기운이 강렬하여 천왕봉까지 뻗을 것 같습니다. 잘록하며 섹시한 허리와 탱탱한 엉덩이의 뒤태는 네 발의 근력과 다른 여성성의 라인을 강조하여 부드러움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엉덩이의 꼬리는 흔적 뿐 이지만 뒷머리 끝까지 올라왔을 겁니다. X축으로 양다리와 벌리고 있는 자세는 더욱 안정감을 줍니다. 사자가 한 마리였다면 어땠을까요.

   
▲ 사자의 입모양

‘대칭속의 비대칭’ 동적 절제미

대칭형 같은 쌍사자석등을 잘 살펴보면 ‘대칭속의 비대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대칭은 동적인 운동감을 보여주며 절제된 파격도 느낄 수 있게 하지요. 쌍사자 석등을 잘 보면 사자 한 마리는 두 팔과 입으로 온힘을 다함에 ‘아’(阿)하고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힘에 부쳐 ‘아’하고 입을 벌린 사자와 굳게 입을 다문 사자를 갈라서 암수를 구별하기도 합니다. 사자의 더욱 잘록한 허리와 불룩한 근육과 강인한 다리를 통해서 서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암수논쟁을 벌여 묵언정진을 하고 있는 녀석을 숫사자로 보는 듯합니다.

쌍사자석등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입모양에 들어나는 불교정신이지요. 사자의 불끈한 근육과 부릅뜬 눈을 보면 석굴암의 금강역사와 그 입모양을 연상시킵니다. ‘아’와 ‘훔’은 산스크리트어의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창조와 파괴를 의미하지요. ‘아’와 ‘훔’이 합쳐지면 진언의 시작이 되는 ‘옴’이 되는 거구요. 비로소 힘자랑하는 사자에서 시작과 끝을 잇는 불멸의 지혜를 전법하는 인격으로 사자는 승화됩니다.

석등에서 실제 등불이 있는 화사부는 불타의 꺼지지 않는 자비광명을 상징하지요. 부처의 진리가 두루 화창으로 퍼져 무명의 두려움을 밝히는 창구인겁니다. 석등에 사자를 장식한 이유는 백수의 왕인 사자가 그 위력으로써 진리의 빛을 수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쌍사사석등의 화사부는 다른 석등에 비해 비교적 큰 편입니다. 등화를 크게 내고픈 석공의 욕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자의 기운을 감안해서 조형미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일까요. 석공은 화창도 넓게 내었는데, 등불을 밝히려는 것도 있었겠지만 부처님법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신라의 석공이 조각한 쌍사자석등은 시인에게도 포착되어 더욱 생생하게 재현되기도 하고 외연과 내포 또한 확장되어 등불을 켜게 됩니다. 석공이 땀을 흘리며 만든 보람이 오늘에 재현되는 순간이지요. 많은 전란과 중창에도 오롯이 자리를 지킨 석등의 우직함이 발현되고 있는 거지요.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절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천하 호령하던 사자 한 쌍이
연꽃으로 감싼 석등 높이 들었다
하늘엔 용이요
땅에 백수의 왕은 사자다
몸통과 다리에 저 근육을 보라
가슴에 맞대고 힘 모아
갈기 날리며
두 눈은 창공을 날 듯 기세가 등등하다
신라의 숨결이 살아
맥박이 뛰고
승리와 희망의 불 밝히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렇게 일천삼백 년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 땅에 사자의 호통이
천지를 진동한지 오래건만
속리에서 여울져 간 메아리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석등에 불 밝히고 한 쌍의 사자가
무리를 이끌고 달려간다
지구 저편까지
새로운 실크로드를 향해서…

장은수 「쌍사자석등」

보은이 고향인 장은수 시인의 ‘쌍사자석등’ 전문입니다. 시인에게 ‘쌍사자석등’은 단지 무거운 유산으로 남지 않습니다. 신라의 석공과 같은 마음으로 쌍사자 석등을 노래한 시인에게, 오랜 시간 함께했던 도반과도 같은 석등이 있는 장소는 또 다른 화두를 들게 한 거지요. 석등의 기세등등한 기운을 받은 것처럼 읽은 것일까요. 삶의 나침반으로 사자는 그에게 싱싱한 야성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속리에서 나간 사자의 울음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참 궁금하게 합니다. 쌍사자가 오랜 시간 동안 제자리에 있음을 간파한 시인은 석등을 이고 있는 사자에게 출세간의 용맹정진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비로소 등불을 얻은 자의 숙명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장은수 시인에게 ‘쌍사자석등’은 새로 디지털시대의 공양으로 불을 피우는 모습입니다.

풍장의 시인 황동규는 바람처럼 거슬림이 없지요. 속리산 법주사 그리고 쌍사자 석등으로 오기 위해 말티재를 넘습니다. 겨울바람을 쐬고 싶은 황동규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속리산 법주사와 쌍사자석등을 돌아보지요. 하지만 그가 정녕 보고 싶은 것들은 속세를 떠난 눈먼 자에게 보이지 않는 점이지요.

꽝꽝 언 길 달리고 싶어
불현 듯 집을 나서
하루종일 겨울 옷 제대로 걸친 산 찾아다니다
속리산 법주사에 닿았다
지난 장마에 파인 언덕이 기다리고 있을 뿐
난생 처음으로
쌍사자 석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석등 받치고 선 두 사자의 잘룩-섹시 허리
그냥 모르는 체 지나쳤다
꿈결처럼

황동규 「꽝꽝 언 길 달리고 싶어」

   
▲ 1930년 쌍사자석등 오가와케이키치 작.
시인은 겨울을 입은 설경의 산을 찾았지만, 시인에게는 장마에 파인 언덕만이 보일 뿐입니다. 세속을 떠나온 자리에도 여전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인데, 이때 이상한 일을 감지하게 된 거지요. 늘 기다리던 ‘쌍사자 석등’도 기다리지 않았고 늘 밝게 해줬던 사자의 섹시한 허리마저 보이지 않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쌍사자석등’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석등이 나를 기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누구나 기다리고 맞이하였다는 거지요. 만나지 않은 것은 석등이 아니라는 점이요. 잘 알고 있는 것들이 모르는 체 지나쳤을 때의 황당함에 상심은 컸을 거예요. ‘쌍사자석등’도 시인의 마음을 눈치 챘을 것 같네요.

다음날 사하촌에 소리 없이 찾아온 겨울옷을 잔뜩 입은 마당의 모습에서 시인은 ‘눈’이란 진주를 발견하지요. ‘꽝꽝 언길’을 달리고 싶거나 ‘불현 듯 집’을 나서는 행위를 보더라도 꼭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요.

언제든지 진리의 빛이 그리워 어둔 세상을 밝히고 싶다면 신라의 석공처럼 속리산 법주사에 가야합니다. 쌍사자석등은 도회의 가로등이나 샹들리에와 같이 대낮같은 빛을 닮으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석등은 밤의 어둠을 보기 위해 세속을 떠난 이에게 갈 길에 비춰주는 으스름한 불빛일지도 모릅니다.

촉광이 무겁다고 무명의 세계가 가라앉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쌍사자석등은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마음에 스스로를 비추는 등불을 요구하네요. 바람의 종을 빌려 자기가 갖고 있는 하나의 등불을 잘 지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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