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아미타세계를 얻은 백제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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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아미타세계를 얻은 백제의 숨결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1.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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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 국보 제 106호-

청주박물관 불비상 3점 중 유일한 국보, 세종시 비암사서 발견
백제의 장인, 돌조각을 다듬어 아미타부처 조각하고 발원문 새겨

김덕근 시인·충북작가 편집장

   
▲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삼존비상 정면

봄날 같은 겨울 우암산 우회도로를 걸으며 긴 무명의 바다를 돌아봅니다. 부지런한 겨울나무는 온 힘을 다해 땅의 기운을 무거운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구요. 성질급한 새순은 봄자락이 그리웠던지 빼꼼 고개를 들어 무심천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고단한 육신의 걸음에 저절로 호흡이 무거워질 무렵 멀리 상당산성이 보입니다. 산행을 하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 눈인사도 합니다.

청주의 주산인 우암산 동쪽 기슭에 국립청주박물관이 있습니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유작이기도한 이 작품은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되어 유물을 만나거나 체험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마당으로 숲을 이룹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말했던 김수근의 건축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의 건축미학을 조화, 배려, 소통으로 정리해본다면 그것을 한꺼번에 펼쳐놓은 곳이 우암산 능선입니다.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배려, 자연과 사람과 건물과 소통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채나눔을 볼 수 있지요.

출입구부터 이어지는 낮은 성벽은 자기영역을 지키려는 폐쇄적 공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자연과 어울려 멀리 보이는 상당산성의 허리와 이어지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한없이 낮은 자세로 앉아 있는 박물관은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물관은 사람들에게 내부의 전시공간과 외부의 자연공간이 수시로 교류하게 합니다. 여느 박물관과 달리 탐방객은 역사를 되새기길 뿐만 아니라 빛의 침묵과 자연의 언어를 읽게 되는 거지요.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 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처럼 각 박물관의 대표유물을 정한다면 당연 청주박물관은 불비상을 들어야 합니다. 연기파 불비상이라 불리는 흔치 않은 불비상 3점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106호), 기축명아미타불비상(보물 367호), 미륵보살반가사유불비상(보물368호)’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이 불비상은 50년 전 모두 청주 인근인 세종시 비암사(飛巖寺)에서 기적과도 같이 발견된 겁니다. 불비상은 모두 중앙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가 청주박물관 개관하던 해에 대여의 형식으로 우암골로 시집을 오게 된 거지요.

국보가 하나라도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면치레했든,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든 관계는 없습니다. 이 불비상이 청주에 자리해 4반세기가 지났다는 건 우암산을 사이에 두고 용두사지 철당간과 함께 청주의 등대와 염원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옆면 실측도

받침돌 지붕돌 없이 몸체만 남아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이하 아미타 불비상)은 청주박물관이 자랑하는 제3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한눈에 보더라도 그 장엄함을 알 수 있지요. 블록벽돌 2장 크기의 잿빛 곱돌비석은 자기 키 보다 훨씬 높이 있어 관람객의 눈높이와 같이합니다.

3관의 일주문처럼 자리하고 있지만, 이미 속도와 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미타불께서 기침을 여러 번 하셔도 총총걸음로 덩치가 큰 감로도나 지장보살도로 향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비상을 친견하지 못하고 간다는 건 청주박물관을 못 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불비상을 만나려면 마음의 돋보기 하나씩 준비해야 아미타불이 보일 겁니다.

‘아미타 불비상’은 돌조각을 비석처럼 다듬어 아미타부처님을 조각하고 발원문을 새겨놓은걸 말합니다. 조각의 조형미와 발원문의 금석문을 통해 도상적 특징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볼 수 있어 ‘아미타 불비상’은 타임캡슐과도 같은 거지요. 불비상의 원형을 재구해보면 받침돌과 몸돌 지붕돌 구성이 되어있지만 ‘아미타 불비상’은 몸체만 남아있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끝없는 지혜의 빛(無量光)과 무한한 생명(無量壽)을 지녔다는 ‘아미타불’은 서방정토나라에 있으면서 중생들에게 영원한 광명과 자비를 베푸는 부처이지요.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의 개념을 모두 모아 아미타세계를 이해하기는 쉽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왜 정토의 나라에서 왕생하기를 바랐을까요. 정토의 나라에 태어난다는 건 궁극적인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거지요. 이제 ‘아미타불비상’을 잘 볼 수 있다면 조형언어에 담긴 간절한 염원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아미타 불비상’의 얼굴이기도 한 몸돌의 전면은 백제의 조각장이 가장 공들인 부분입니다. 모든 사람 들이 원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를 허투루 만들 수는 없지요. 사각의 프레임은 마치 감실처럼 보이는데, 작은 방안에 아미타 세계를 넣은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도화지 같은 테두리에 돋을새김으로 다양한 도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는 미타세계의 초월성과 생명력을 갖게 합니다. 현존하는 불비상 가운데 많은 불교의 아이콘을 담고 있기에, ‘아미타 불비상’을 보는 건 작은 석굴사원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불비상을 따라 읽어간다는 건 아미타경이란 불전 모티프로 유토피아와 시대의 바람을 따라가는 구도의 길이기도 합니다.

‘아미타불’은 종교를 떠나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부처님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간절하여 사무침이 하늘과 땅에 미칠 때까지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고요. 산중을 나와서 까지 알려진 도로아미타불도 있네요.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뒷면 실측도

지혜와 자비의 아미타불 돋을새김

우리 시가에 불리 우는 아미타불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광덕이 노래한 ‘원왕생가’에서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세계까지 가십니까/무량수불 앞에 나아가 일러다가 사뢰소서”나오는 무량수불도 ‘아미타불’입니다.

달에게 광덕의 간절함인 ‘원왕생, 원왕생’을 전하는거지요. 그것도 모자랐던지 아미타불이 48대원을 이루지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그만큼 무량수불이 마음 깊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피리를 잘 불었던 월명의 ‘제망매가’에 “한 가지에 나서/가는 곳을 모르는구나/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날 기다리며/불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라는 것 처럼 미타찰은 누이와 약속의 장소이자 다짐을 하게하는 아미타세계입니다.

이렇듯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나라가 있기에 달빛 아래에 젖어 있는 모든 것들은 정토왕생을 꿈꾸게 합니다. 월명이 이 노래를 불렀더니 갑자기 바람이 불어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려 없어졌다는 걸 보더라도 그 신령한 기운을 알 수 있습니다.

‘불비상’의 가장 중앙에 보이는 건 주인공인 아미타부처님입니다. 기하학적 조형감은 어느 자리에서 보더라도 안정감이 있지요. 아미타부처님은 모든 두려움과 사리지게하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시무외인과 여원인이라는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아미타부처가 주불이면 반드시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이 있고 왼쪽에 관세음보살이 함께 합니다. 세상을 모든 것에 두루 비치는 지혜보살인 대세지보살과 중생이 부르면 달려 나가 자비를 베푸는 사랑의 화신인거지요. 지혜와 자비가 하나가 된 존재는 아미타부처인데 영원한 생명의 꽃으로 불이(不二)가 되는 겁니다.

‘아미타불비상’의 광배는 배모양 같기도 하고 나뭇잎모양 같기도 합니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거지요. 아쉽게도 ‘아미타불비상’은 얼굴이 닳아 없어져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미타불의 얼굴을 마음에 그려가는 것이 아미타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아미타불비상’을 깎았던 백제인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박물관에 수없이 다녀간 이름 없는 천의 얼굴이 주인공으로 보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아미타불에서 발산하는 정신의 빛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관무량수경을 보면 “여래 몸의 털구멍마다 빛이 나와 빛줄기 하나하나마다 끝에 연꽃이 있고, 그 연꽃마다 화불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아미타불비상’의 장엄도 이와 같이 도상화 했을 겁니다.

불꽃무늬를 정교하게 새김질한 광배는 신성한 존재인 아미타불의 아우라입니다. 아미타의 치솟는 불기운과 광명세상이란 진리의 불빛을 보는 것만으로, 중생들이 집착하는 번뇌도 놓게 되는 거지요.

한 땀, 한 땀 구슬을 이어 놓은 광배를 새겼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광배의 큰 테두리는 덩굴무늬로 하늘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아 상승감과 신비감을 보여줍니다. 그 사이로 천인상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지요.

불비상을 보면 흔히 비천상을 볼 수 있습니다. 천상의 장소4인 정토세계를 비천상을 통해 아미타세계의 화려함과 장엄함을 드러내는 거지요. 비천상은 서양의 천사와는 달리 날개가 없습니다. 대신 하늘거리는 천의(天衣)의 옷자락만으로 날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불비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궁을 한손으로 가볍게 받들고 있는 비천상을 보면 천인상의 공양은 어디까지 미칠까 궁금하게 합니다.

   
▲ 국립청주박물관

‘사자’ ‘용’ 새겨넣어 불상 수호

천인(天人)의 공양과 찬탄은 천인주악상(天人奏樂像)을 통해 드러납니다. 불비상의 양쪽 허공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주했을까요. 비천인(飛天人)은 뛰어난 연주기예를 가졌다는 건데, 두드리지 않아도 울리고 불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가나는 악기가 아니었을까요.

묘법연화경에 “여러 천인들이 천고를 두드리고 항상 여러 음악을 연주”한다거나, 관무량수경의 극락정토를 묘사하는 부분의 “즐거움 가득 괴로움 없는 나라, 온갖 보배 널려 있고 항상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을 보더라도 천인은 하늘의 북과 하늘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했을 겁니다.

천인의 거주는 하늘이며 자유롭고 즐겁게 날아다니는 능력 또한 지니지요. 수려한 비상으로 자태를 보여주어 천의가 비행을 가능하게 한 도구처럼 보입니다.

불비상에서 주악상이 연주하는 악기는 요고, 종적, 금, 횡적, 당비파, 소, 생 등으로 확인되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음악사에 귀중한 보석입니다. 불비상에 나오는 복식도 백제 의복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임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제 불교 미술사를 뛰어넘는 학제적 연구과제가 필요한 때입니다.

‘불비상’에서 아미타불을 위시한 협시불과 갑옷을 입은 천왕은 모두 연꽃 위에 있고, 모든 불비상을 바치고 있는 것 또한 연꽃입니다. 연꽃대좌에서 제불보살이 함께하는 연화화생의 장면은 성스런 공간을 확인시켜주는 징표입니다.

극락의 연꽃위에 왕생하여 지혜와 공덕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거지요. ‘불비상’에 나오는 9존불 모두가 하나의 연화대좌의 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건 그물과 같은 만다라세계를 그려보게 합니다.

찬찬히 불비상을 보면 ‘사자’와 ‘용’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자는 ‘최상의 높은 자리’라는 면에서 아미타불의 위엄과 권위를 뜻하기도 하지만, 불상을 수호하기도 의미도 있습니다. 아미타세계와 불비상을 지켜주는 호위무사와 같은 거지요.

불비상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있는데, 서로 머리를 맞대어 네발을 딛고 서있는 모양입니다. 아래에 겨우 자리에 잡아 사자의 위엄은 보이지 않지만, 이 역시 불비상 지킴이 역할을 하며 아미타세계의 장엄을 장식 하고 있습니다. 이것마저 불안해서일까요. 불비상의 양 옆에는 용머리가 앞을 향하여 놓여있습니다.

용은 청정불국토를 지키며,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의 뱃머리이기도 합니다. 물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불비상은 선실이 되는 셈이지요. 해학적인 용의 모습은 좌우 대칭이 아니라서 더욱 실감이 납니다. 아미타세계에 들어왔다는 건 반야용선에 선장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260여자 글로 뒷면에 발원문

‘아미타불비상’이 청주박물관의 자랑인 것은 불상의 조형미에도 있지만, 불비상 곳곳에 260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당시의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불비상의 경우 반드시 뒷면까지 봐야 불비상을 온전하게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상의 경우 무엇인가라도 흔적을 남기니까요. 뒷면에는 20구의 화불좌상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주요 시주자의 이름도 있습니다. 금석문의 기록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판독된 걸 대략 정리해보면(청주박물관 풀이)

“전씨 등이 마음을 모아 나라를 위해 아미타불상과 관음??대세지보살을 예를 갖추어 만들었다…화불 20구를 예를 갖추어 만들다…계유년 4월 10일에…공경 되이 발원하여…50여명의 지식이 함께 국왕, 대신, 칠세부모, 모든 중생을 위해 예를 갖추어 절을 짓고 이에 관계한 지식의 인명을 기록한다<이하 인명과 관등>

우선 아미타불의 존명이 나와 불비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계유년 673년(문무왕 13년)에 불비상을 만든 이유는 나라와 국왕 대신 칠세부모 모든 중생을 위해 세웠다는 거고요. 점령 통치하에서 표기상 나라와 국왕은 점령국인 신라겠지만, 자꾸만 백제와 백제의 왕으로 읽혀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패전국의 마음도 가볍지 않게 보이고요.

그렇다면 백제유민은 옛 영토에 왜 하필 아미타불비상을 세웠을까요. 긴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천도하기 위한 아미타신앙은 감로수와 같았을 겁니다. 왕조가 바뀌어 통일신라에 조성된 아미타불비상은 백제 유민의 염원이 담겨져 있고, 백제의 조각 전통을 고스란히 전했기에 백제의 마지막 유품으로 봐야할 겁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1300년 전 백제유민들이 끊임없이 불교적 유토피아를 지향한 건 무엇 때문일까 더욱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백제 유민이었던 장인이 살았던 시대와 화쟁하고 회향하려했던 건 아닐까요.

박물관을 나와 명암지 벤치에서 정박해 있는 주인 없는 오리배를 바라봅니다. 해는 뉘엿뉘엿 석양을 물들고, 번다한 도회로 돌아가는 길 나옹스님의 게송을 되새겨봅니다.

아미타 부처님 어디에 계시는가
마음속에 깊게 새겨 한시라도 놓지마라
생각하다 생각이 다하여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이 몸이 법신불이 되어 늘 찬연한 빛이 나오리라

정토의 나라까지 가는 길은 예토의 세계인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혜능의 ‘자심미타(自心彌陀)’나 원효의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본다면, 극락정토는 멀리 저곳의 세계가 아닌 내 마음의 세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인주악상이 연주하는 소리도 바로 들을 수 있다면 고마운 것 이구요. ‘국립청주박물관 아미타불비상 비천상연주하다!’ 보고 싶은 일면의 뉴스입니다. 겨울바람이 착하게 소멸 될 무렵 박물관 아미타부처님께서 살짝 비암사를 다녀오실지도 모르구요. 그렇다면 정말 귀하고 귀한 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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