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날개를 입히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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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날개를 입히는 즐거움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7.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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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대우꿈동산 무료로 옷 수선해주는 이명호씨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감이 결손가정 예방”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외면하고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았다가 그만 날개의 초가 녹아 내려 바다로 추락했다. 때문에 이카루스의 날개는 어리석음과 탐욕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명호씨(48)가 소년소녀가장들에게 10여년째 만들어 주는 날개는 탐욕이 아니라 삶의 이정표다. 옷이 날개라고 했다. 말 그대로 옷은 그 사람의 맵시는 물론 됨됨이까지 바꿔 놓는다. 이명호씨가 옷을 수선해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날개를 입히는 이유는 바로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그를 처음 대하는 순간 마치 옛날 학원가의 기도(?)를 보는 것같았다.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 암팡진 인상은 살갑기보다는 버거움으로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그 이면의 모습은 이런 선입관을 일시에 무너뜨렸고, 그의 투박함이 되레 한 껏 믿음을 심어 줬다. 그는 10여년째 대우꿈동산(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무료로 옷을 수선해 주고 있다. 이곳 대우꿈동산 한 켠엔 아예 옷수선을 위한 두 세평자리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이씨는 아이들과 대화하며 때론 충고하고 때론 혼내면서 속정을 나누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한다. 오히려 내가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다. 어느 땐 자세가 흐트러지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따끔한 충고와 함께 정으로 대하다보면 더 믿음이 생긴다.”

 한창 사춘기인 이들에게 옷수선은 해진 것을 꿰매는 것보다도 자기 마음에 맞게 고쳐 입는 성격이 더 강하다. 옷을 맡기는 아이들은 이씨로부터 부모의 정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씩 대우꿈동산을 방문, 옷을 수선해 줬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번 꼴로 찾는다. 물론 아이들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 간다.

 이명호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자신의 본업 때문이다. 그는 지금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신라상가에서 ‘일개미옷수선’이라는 말 그대로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불과 4, 5평에 불과하지만 그의 말대로 ‘먹고 살만큼의 벌이’를 보장하는 분신과도 같다. 이곳에서 옷수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우꿈동산과 인연을 맺었다. “나도 어렸을 때 엄청나게 고생했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의 고충과 애환을 잘 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잠시 짬을 내 손을 봐주는 것에 불과하다. 하찮은 옷수선이지만 소년소녀 가장들에겐 결코 쉬운게 아니다. 그래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관심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적 객지생활이 힘들 때마다 주변 할머니들이 건네주는 반찬과 배려가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런 것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한다.”

   
 대개 봉사하는 사람들은 가진자보다 못가진자가 많고 고생한 이력도 남다르다. 그래서 그의 과거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온 일을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며 일거에 입을 막았다.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소개한 부인 민경숙씨(45)로부터 간신히 전해들은 얘기는 이씨의 고향이 옥천군 청성면 유금리라는 것과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 돈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고, 신혼 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정도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갑자기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것같던 이씨는 “워낙 산골짜기라서 변변한 농토도 없었기 때문에 나갈 수 밖에 없었고, 도둑질 빼고는 안 해 본 것이 없다”며 자신의 과거를 정리했다. 장남인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동생 3명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쳤다. 지금도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에겐 요즘 큰 걱정이 하나 있다. 대우꿈동산 바로 옆으로 초현대식 아파트가 속속 건축되면서 그러잖아도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더 주눅들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소년소녀 가장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동정심만 갖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이를 북돋아 주는게 중요하다. 때문에 잘못이 있을 땐 따끔하게 혼내고 잘 한 일엔 용기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조만간 고층 아파트에 묻힐 대우꿈동산은 누가 봐도 왜소해 보인다. 아이들이 상처나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들에겐 ‘차별화’가 가장 큰 두려움이다. 솔직히 어느 독지가가 대우꿈동산을 리모델링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우꿈동산 같은 시설이 없는 세상이 자신의 희망이라고 밝힌 그는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을 특별히 강조했다. 소년소녀 가장들을 접하며 결손가정의 원초적 책임은 어른들한테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옷만 봐도 그  사람 됨됨이를 압니다"

 옷수선집은 경기가 안 좋을 수록 오히려 손님이 늘어난다. 살기가 어렵다보니 입던 옷을 고쳐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호씨의 옷수선집엔 손님이 꾸준하다. 하기사 요즘같은 경제난에 자기 돈주고 옷이라도 고쳐 입을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이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매무새만 봐도 그를 알아 본다고 한다. 그만큼 옷은 이를 입은 사람의 자기표현인 것이다. “요즘은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자기주장이 강해 새옷을 사고도 취향에 맞게 뜯어 고친다. 멀쩡한 옷을 새롭게 고쳐 주는 것도 의미있지만 해진 옷을 고쳐 줄 때가 더 즐겁다. 아무리 낡은 옷도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 잘 사는 선진국처럼 국민들이 이런 것을 체질화해야 비로소 우리나라도 건강해지지 않겠나.” 그에 따르면 요즘 남학생들의 바지취향은 좁아졌던 발목 부분이 조금씩 넓어진다는 것. 이른바 쫄바지가 점차 판탈롱으로 넘어가려는 추세다. 그래도 학생, 청소년들의 유행은 따라잡기가 힘들다고 한다. 국내외의 잡지책을 오려 와 이대로 고쳐달라고 떼를 쓸땐 민첩해야 할 손이 오히려 갑갑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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