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프로로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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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프로로 살아야 하는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3.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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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31)
윤정용 평론가

▲ 슈퍼스타 감사용
감독 김종현
출연 이범수 , 윤진서 , 공유 , 류승수

감사용이라는 야구 선수가 있었다. 그는 단지 왼손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TV로도 방송되었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바로 <슈퍼스타 감사용>(2004)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감사용이라는 프로야구 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많은 스포츠영화 중 하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감사용(이범수 분)은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뛰어나거나 혹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슈퍼스타’가 아니라,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슈퍼스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패전 처리’ 전문 투수다. 그가 등판할 때는 이미 경기의 승패가 이미 결정된 상태이기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 오죽하면 상대팀은 감사해한다. 그래서 그는 상대팀에게는 이름처럼 ‘감사용’ 투수다. 상대팀은 그렇다 치더라도, 야구 경기의 캐스터, 해설자, 그리고 팀 동료조차도 그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늘 지기만 하는 슈퍼스타

영화는 늘 지는 경기에만 출전하는 감사용이 진짜 슈퍼스타인 박철순(공유 분)과 선발 맞대결을 하는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박철순은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의 달성을 앞두고 있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투수들은 박철순의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등판을 꺼려 결국 감사용이 마운드에 오르게 된다. 영화에서 감사용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는 단 1승을 위해, 아니 자기 자신을 위해 부상에도 불구하고, 공을 던진다. 영화는 여기까지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보통 승패가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서 승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이 영화는 ‘어떤 위치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라는 ‘훈훈한’(?) 메시지를 준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왜냐하면 영화는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독특한 이름의 선수들, 예컨대 주인공 감사용을 비롯해 인호봉, 금광옥, 김바위 등 대부분이 실제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무엇보다도 관심을 끈 것은 1982년에 창단해 1985년에 청보 핀토스에 매각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전설적인 야구단의 존재를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호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 속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것은 어쩌면 이 영화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한편의 소설이다.

바로 박민규라는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이라는 소설이다. 박민규는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 또 하나의 문제작인 『지구영웅전설』(2002)로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신인 작가상을 수상했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당대 가장 주목받는 신인작가로 부상했다.

늘 패배만 하는 우리들의 삶

박민규의 독특하면서도 난삽한 글쓰기는 사실주의, 모더니즘 등 어느 문학 비평 규준으로는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거의 만화 또는 개그에 가깝다. 그래서 문학을 신성하게 여기는 점잖은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당혹해하고 불편해한다. 그러나 읽기의 당혹감, 불편함 때문에 그의 소설을 빛나게 하는 발상의 참신함, 그 발상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능력까지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이 소설은 최근의 박민규의 소설과 많이 다르지만 그의 소설 세계를 이해하는데 여전히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의미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순간이 있다. 그 특별한 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별한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특별한 순간이 특별한 해에는 특별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작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1982년을 특별하게 호출하고, 다소 호들갑스럽게 1982년에 대해 논평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때에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으며, 반면에 ‘누군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혼란과 혼돈 속에서 주인공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프로야구의 출범이었다.

1982년은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 해였다. 각 도시를 연고로 6개의 프로야구팀이 탄생했고, 이중 “나”가 살고 있는 인천을 대표하는 팀은 슈퍼맨을 마스코트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생전 처음 접하는 프로야구에 대한 설렘으로 “나”와 친구들은 프로 야구에 열광하고, 초등학교를 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최초(?)의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이 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애석하게도 개막전 이후 삼미 슈퍼스타즈는 열 번을 싸워 아홉 번을 지는 최악의 팀이 되어갔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기에 한 때 유행하던 ‘80년의 후일담 문학’과 비교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적 배경이지만 이 작품은 후일담 문학과는 어조와 분위기에서 다르다. 즉, 80년대의 후일담 문학의 어조가 무겁고 어두운데 반해,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하다. 때로는 유쾌하기까지 하다. 또한 이 작품은 복고바람에 편승하지도 않는다.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주목한 이유는 프로 야구에 대한 특별한 관심보다도, 대부분의 우리의 삶이 늘 패배만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지만 삼미는 꼴찌로 전락했고, 결국 팀은 매각되었다. 삼미를 통해 “나”는 프로야구의 개막과 함께 활짝 펼쳐진 프로의 세상에서 “평범하면 아웃된다”는 정글의 법칙을 알아버린 것이다. 또한 “나”는 그저 평범하기만 한 자신의 인생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와 닮아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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