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 잡고 차벽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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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 잡고 차벽을 넘어서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5.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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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 신명나게 노는 축제 마당이어야 한다. 그런데 축제는커녕 서글프고 참담했다. 노동자 대회가 끝나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했다. 경찰은 도로 곳곳에 차벽을 둘러쳤다. 집회 참가자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포위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이 지났다.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많이 잊었고 가만히 있었다. 경찰은 4월 18일 세월호 범국민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차벽을 쌓아 올렸고 캡사이신 물대포를 쏘았다. 차벽을 설치한 것 자체가 불법인데도 불법 차벽을 훼손했다며 평화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마구 뿌려대고 시민들을 연행했다.

무력하고 참담했다.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경찰 차벽과 물대포 그리고 캡사이신 최루액. 이 엄청난 공권력 앞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시민들.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그렇게 시위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냐고. 그러면서 국내 정치 지형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다. 4·29 재보선 선거 결과와 야권 분열 그리고 2017년 대선 전망 등등. 그 친구의 말은 기본적으로 맞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 문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냉소주의적 태도다. 나도 한때는 냉소주의자로 자처했었다. 쿨하고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냉소적인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정권은 기뻐한다. 시민들이 정치 문제에는 신경 끄고 스포츠에, 드라마에, 연예인 등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서 즐기라고 부추긴다. 냉소주의자야말로 자신이 싫어하는 정권에 가장 충실하게 기여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경찰 병력과 맞닥뜨릴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저들을 비난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쨌든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가해자는 경찰 병력이니 말이다. 경찰이 캡사이신 물대포를 미친 듯이 뿌려 대어 참가자들 모두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일부 시민들은 무표정하게 방패 들고 서 있는 전·의경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하면서 격한 분노를 쏟아냈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 병력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온 정권의 꼭두각시일까. 그렇다면 그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그들의 상관을, 그 상관의 상관을, 다시 그 상관의 상관을 비난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들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대우하여 책임을 물어야 할까.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평화로운 시위를 불법·폭력 시위라고 규정하였다. 보수 언론에서는 일부 장면만을 확대·재생산하였고, 지상파 방송에서는 아예 세월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언론마저 차벽처럼 차단되고 통제된 사회다. 4월 16일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4월 16일, 4월 18일, 5월 1일에 있었던 세월호 집회 중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으로 인해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하여 유엔 인권 특별 보고관들에게 긴급청원을 제출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이다. 세계적인 망신이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국가의 존립 이유를 묻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떻게든 덮으려고만 하고,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니 시민들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5월 2일 범국민 철야 행동을 마무리하면서 4·16 연대 측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부가 어제와 오늘처럼 거대한 공권력을 행사하며 무기력감을 주곤 한다. 그러나 이 정부가 모르는 게 있다. 이런 식으로 억압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실을 향한 의문이 싹트고 더 연대하며 손을 맞잡게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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