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훈月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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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훈月暈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5.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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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월훈月暈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우를 깍기도 하고 고구마를 깍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문학사상’ 1976)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배추씨처럼 사알짝 흙에 묻혀 살고 싶다”던 애잔한 눈물의 시인, 오로지 문학에 순절한 술의 시인, 박용래. 그의 시 ‘월훈(月暈 달무리)’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평생 그의 술벗이며 눈물 벗이었던, 말 그대로 시인의 수어지교(水魚之交)인 ‘관촌수필’의 이문구 선생(2003년 작고)이 쓴 회고담을 들어보세요. “그는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다. 아 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의 시인이여, 당신과 더불어 산천을 떠난 그 눈물들, 오늘은 어느 구름에 서리어 서로 만나자 하는가.” 어느 해던가는 눈이 쏟아지는 대전 역두에서 그 눈이 그칠 때까지 이튼 낯 하루 밤을 줄창 술을 마신 적이 있을 정도로 죽이 맞았던 지기(知己) 주우(酒友)를 선생은 또 이렇게 추억하지요. “그는 자주 울었다. 술자리에서 울지 않던 그를 두 번 밖에 못 보았을 정도로 그는 흔히 울었다. ...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소박한 것, 어여쁜 것, 조촐한 것 등. 그러기에 그는 한 떨기의 풀꽃, 한 그루의 다복솔, 고목의 까치둥지, 오지굴뚝의 청솔 타는 연기, 보리누름철의 발종다리 울음, 논두렁의 미루나무 호드기 소리, 호박잎에 모이는 빗방울, 달개비의 보랏빛, 찔레덤불에 낀 진딧물까지 버려진 것들, 하찮고 애처로운 것들, 저절로 묵은 것들을 사랑해 울었다.”고 합니다. 또한 “야, 문구야. 나는 슬프냐? 너두 내가 슬프냐? 아니지? 그런데 왜 이냥 눈물이 나오지? 야.” 이런 시인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고도 했고요. 그리고는 “여전한 주객이었고, 여전한 실업자였고, 여전한 나그네로서 순직한 시인.”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오십 중반(1981년)을 살고 저승으로 가버린 시인에 대해 길게 인용하는 것은, 이런 진국의 시인, 오로지 시와 술과 (달이 아니라) 눈물에 순절한 시인이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에 있었다는 전설 하나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강경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학교 대표 정구선수였으며, 전교생을 호령하는 대대장이던, 왜정 때 조선은행 입사 후 현찰 부대를 곳간차에 가득 싣고 연해주까지 달리던 사람이, 이렇게 곡진한 눈물의 시인으로 변모한 것도 신비스럽고 애틋한 후일담으로 전하지요.

박용래의 시는 한결같이 짧은 행간의 대담한 생략과 응축을 통해 소박하고 애달픈 서정을 노래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시는 조금 긴 산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깊은 산속 외딴집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의 적막한 외로움과 애절한 그리움을 토속적인 소재들을 바탕으로 적절한 감각어를 동원하여 표현하므로, 노년의 쓰라린 생의 내면을 아프게 전하고 있습니다.

갱 속 같은 마을에 노루꼬리 해가 지면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모과 빛입니다. 시나브로 풀려 내리는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기도하고, 처마깃에 나래를 묻는 이름 모를 새들의 온기를 생각하는 동안, 노인은 참 오래오래 멀리 떠난 혈육들이 안부가 그리운 나머지 떼를 지어 우는 귀뜨라미처럼 벽이 무너져라 속울음을 참아냅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치고 창호지 문살로 달무리가 들지요. 노인의 곡진한 외로움이 사무쳐옵니다.

이 시가 씌여진 70 년대는 아직 노인문제가 제도화 되지 않던 시기입니다만, 밤을 새워 깊어가는 노인의 그리움과 가슴속으로 통곡하는 고독의 실체는 무엇인지, 이미 ‘고령화 사회’(인구비 7%이상)를 넘어 2020년이면 노인 인구 14% 이상 ‘고령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시는 더욱 가슴 답답하고 먹먹한 심정을 전합니다.

잠 못 이루는 모과빛 등불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아, 나의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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