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 중국 자본주의의 심장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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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 중국 자본주의의 심장을 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5.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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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상실을 그려낸 영화 <소무><세계><스틸라이프>

영화로 말하는 세상/ 윤정용 평론가

▲ 스틸 라이프 Still Life , 2006
감독 지아 장커
출연 자오 타오, 한 산밍, 왕굉위, 황용

중국은 1970년대 말부터 급격한 현대화를 겪으면서 기존의 전통적 ‘장소’가 왜곡되고 변형되어 새로운 낯선 공간이 형성된다. 내부적으로는 서구로부터 유입된 소비문화가 중국 문화에 침투하면서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개념이 형성된다. 이 시기에 영화적으로 지아장커(Jia Zhangke)를 비롯한 ‘제6세대’ 영화감독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문화산업과 제도권 내의 상업영화에 저항하면서 저예산 독립영화를 통해 새로운 영화 운동을 전개한다.

제 6세대 영화감독

제 6세대 영화감독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을 비롯한 혁신적인 영화 기법을 시도하며 개혁개방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모더니티에 대한 반발을 재현한다. 그들의 영화는 주로 ‘탈중심화된’ 도시 공간, 즉 일그러진 뒷골목을 배경으로 희망 없는 미래, 우울한 현재를 전경화한다. 카메라는 늘 관찰자의 위치에 있으며, 감독은 인물들의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중국 제6세대 영화를 대표하는 지아장커는 왜곡된 ‘공간’의 문제를 ‘자본의 논리’ 또는 ‘국가 권력’과 연관 지어 일관되게 다루어 왔다. 왜냐하면 지아장커의 영화 속 공간은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공간을 기획하고 배치하는 사건, 즉 공간의 재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아장커의 영화 가운데 특히 <소무>(1997), <세계>(2004), <스틸라이프>(2006)는 자본의 논리뿐만 아니라 기술 관료나 도시 계획가에 의해 생산된 공간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이 공간들은 합리적 이성과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바, 과학적인 법칙에 종속되는 보편적이며 보다 추상적인 현상으로 재현된다. 공간의 추상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산된 공간은 그 주체가 국가이든 지배계급이든 상관없이 주로 권력 집단의 목적에 따라 구성된다.

각각의 영화적 배경은 펀양, 베이징, 샨사인데, 공통적으로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로 인해 ‘정지 상태’에서 ‘왜곡되고 변형된’ 공간이다.

지아장커는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 및 자본화로 인해 전통적 가치가 와해되고 점차 새로운 자본주의적 가치체계가 형성됨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들의 공간 상실의 경험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그려낸다. <소무>, <세계>, <스틸라이프>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장소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소외를 겪는다. 그들은 장소를 상실한 이방인으로서 공간의 생산에 참여하지 못할 뿐더러 그러한 공간 생산의 효과를 향유하지도 못한다.

자본으로 잃어버린 가치

세 영화의 주제는 모두 장소의 상실로 수렴된다. 즉, <소무>와 <세계>는 각각 펀양과 세계 공원의 디스토피아적인 면을 그려낸다면, <스틸라이프>는 수몰 예정 도시인 샨사의 해체를 그려낸다. 이 영화들은 한결같이 “다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방점을 둔다. 특히 중국의 물리적인 변화가 인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그들이 공간과 맺는 관계를 통해 그려낸다. 일반적으로 장소는 인물들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토대로 기능한다. 그러나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자본화된 장소상실의 공간에서는 기억, 역사, 그리고 안락감과 같은 장소의 특징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국의 현대화 및 자본화를 통해 생산된 산물을 향유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본과 지배 권력의 희생자들인 동시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변현된 공간에 저항하는 주체들이다. 세 영화에서 그들이 추구해야할 이상적 장소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소무>에서 샤오우와 메이메이가 공간에 대해 어떤 저항적 선택도 내리지 못하고, <세계>에서는 타오가 마지막에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말에서 해방의 공간을 향한 희미한 가능성이 암시된다. 반면, <스틸라이프>에서는 산밍과 셴홍이 미래를 선택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끝난다. 즉, 앞의 두 편에 비해 <스틸라이프>는 훨씬 더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산밍과 셴홍 모두 샨사를 떠나는데, 그 목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중국의 현대화 및 자본화의 비인간성에 맞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애쓰는 점에서 그들의 떠남은 장소상실이 공간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자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다.

영화의 결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아장커는 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중국의 현실을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지아장커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요컨대, 지아장커의 영화는 그칠 줄 모르고 현대화, 자본화되어 가는 중국의 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안전과 안정의 장소를 복원하려는 그의 강렬한 의지의 산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장소의 복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휴머니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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