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모르는 어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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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모르는 어머니 이야기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5.07.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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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퇴진을 압박하는 서릿발 같은 발언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의 한마디면 정리될 사안이지만 결기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을 빗대 야당에서는 1971년 아버지 박 대통령의 공화당 ‘실세 4인방’ 제거작업을 거론하고 있다. 당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켜 ‘10·2 항명파동’을 주도한 김성곤, 길재호 등 중진의원 4명을 중앙정보부로 끌고가 고문했다. 이후 두 사람은 건강도 잃고 정치판을 아예 떠나버렸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다반사다. 하지만 지금의 박 대통령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최고 권력자다. 군복에 권총을 차고 시청앞에 등장했던 아버지와는 근본(?)이 다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세간의 뒷담화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대통령으로부터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뒷모습은 엿볼 수 없는 것인가. 고인과 빨치산 여성전사에 관한 숨은 일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1928년 괴산읍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류금수 씨(2011년 작고)는 청주여고를 거쳐 이화여고를 졸업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사회주의 사상에 눈뜬 류씨는 48년 남노당 여성조직을 통해 월북해 강동정치학원에 입학했다. 얼마뒤 남북연석회의에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다시 월남해 여성동맹 활동을 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두번째 감옥생활을 하던 중 한국전쟁 발발로 인민군에 의해 풀려나게 된다. 이후 남노당 여성동맹 충북책임자로 활동하다 인민군의 후퇴와 함께 빨치산으로 변신하게 된다.

결국 경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됐지만 요행히 탈출에 성공해 괴산집에서 숨어지내게 된다. 반동좌익 색출에 위험을 느낀 할아버지는 손녀딸을 청상과부로 위장시켜 음성군 시골마을로 보낸다. 얼마뒤 결혼은 했지만 자손이 없는 마을이장의 후처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 과거를 모두 숨기다보니 이름조차도 바꾸고 살 수밖에 없었다. 1968년에 마을 부녀회 자립사업하는데 돈이 없어 고민하던 중 글을 배운 류씨가 친필로 청와대 육 여사에게 편지를 썼다. 뜻밖에 당시 2만원의 돈이 내려와 군에서조차 깜짝 놀랐다는 것.

고마운 심정으로 부녀회에서 엿을 고아서 감사편지와 함께 청와대로 보내자 이번엔 육 여사의 답장으로 돌아왔다. 육 여사에게 신뢰감을 느낀 류씨는 자신의 비밀스런 개인사를 11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로 써서 보내게 됐다. 얼마뒤 중앙정보부 직원이 가족들도 모르게 접근해 남산 사무실로 오도록 안내했다. 거기서 간단한 취조를 마친 뒤 “영부인님의 뜻이니 지난 일을 다 잊고 본인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내시오”라고 했다는 것. 반공방첩(?) 대통령의 부인이 빨치산 거물급(?) 여성전사에게 20년 만에 자유로운 신분세탁을 해 준 것이다. 평생 비전향 사회주의자로 강단있게 통일운동을 하던 류씨는 지난 2011년 작고했고 올초 ‘충북 여성인물사’에 소개됐다.

유씨와 고 육 여사만이 알고 있던 비밀은 지난 2008년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씨의 구술자료집 발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생전에 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던 류씨는 고 육 여사 서거 당시 서울로 올라갔다. 먼 발치서 장례식을 보며 명복을 빌었다는 것. 한반도 분단 이데올로기의 서슬과 총탄에 희생된 된 두 여인이 그렇게 화해한 셈이다. 아무쪼록 ‘배신의 정치’에 날을 세우고 있는 박 대통령이 류금수 씨의 구술집을 통해 그 두 여인을 만났으면 한다. 책 제목은 ‘강동정치학원 출신 3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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