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얘기는 ‘그만’ 도지사 얘기도‘이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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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얘기는 ‘그만’ 도지사 얘기도‘이젠 그만’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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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겪는 이원종지사의 운신, 역할검증 본격 부각
 참여정부의 가장 큰 공적을 하나 든다면 대통령 권위의 타파다. 적어도 외형적으론 그렇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선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곧 법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입만 열었다하면 당장 언론의 타깃이 된다. 가부장적 통치문화에 익숙한 국민들의 입장에선 이런 현상은 자칫 혼란으로 비쳐질 수 있고, 실제로 노무현정권에 맞서는 수구언론들은 이를 공격의 호재로 삼는다. 어쨌든 국민들의 입장에선 대통령 얘기는 이젠 식상하다. 탄핵정국을 거쳐 실물 경제마저 어렵게 되자 이런 분위기는 확고해졌다. 통치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측면에서의 대통령 권위실추는 되레 정치발전의 지표일 수도 있다.

 충북에서도 그 아류 현상이 지금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흥이 사태로 불거진 도지사의 위상실추는 해석하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쏟아 낸다. 시민단체가 이원종지사의 역할검증을 ‘프로젝트’로 제시할 정도로, 비록 아직은 일부 세력에 국한되지만 이지사의 도정운영이 이처럼 유권자들로부터 정면으로 도전받기는 처음이다. 전임 주병덕 지사 역시 임기후반으로 갈수록 도민들의 여론악화에 시달렸지만 ‘역할검증’을 공개적으로 위협받지는 않았다. 시민운동과 유권자의식이 그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진 측면도 있지만 이지사는 지금 자신의 집권(?)에 근본적 도전을 받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사 앞에선 머리를 쓰지 마라?”

 시민단체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충북도가 향후 부당 민원에 대한 강경 방침을 밝혔지만 이 ‘강경(强硬)’이라는 단어는 이원종 통치스타일과는 원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민감한 민원에 대해 이지사가 줄곧 견지한 것은 숙시주의(熟枾主義)다. 감이 충분히 익어서 떨어지듯 이지사는 초장에 개입하기 보다는 충분히 기다렸다가 돌파구를 모색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현안으로 등장했던 중원호텔, 밀레니엄타운, 공무원노조, 신행정수도 특별법 논란의 사례에서도 이지사의 이런 운신이 예외없이 드러났다. 일단 일이 벌어지면 해결사적인 돌파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준용해 왔다.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이다.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이지사는 선을 긋는 과감한 추구형보다는 지사의 인사권을 활용한 철저한 관리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선 측근으로 분류되는 전 현직 공무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유(柔)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인사에서만큼은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지사에게 한번 찍히면 좀체로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관가의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이러한 관리형 처신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민원에 대한 대응 자세에서 나타난다. 민원이나 사태의 핵심에 서는 것 자체를 원초적으로 꺼린다.
 
 그동안 이지사의 도정운영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제기된 것이 소위 ‘참모론’이다. 이지사의 관리형 스타일을 보완해 주는 소신과 신념의 참모들이 항상 요구된 것이다. 주병덕 전 지사의 경우 세련되지 못한 도정운영 때문에 논리로 무장한 관리형의 참모가 필요했지만 스스로 관리형 도정을 견지하는 이지사에겐 오히려 ‘몸으로 때우는’ 돌파형 참모가 중시되는 것이다. 한 때 이지사에게 발탁되고도 단명한 참모들의 공통적 특징은 그들 스스로 관리형에 속했다는 점이다. 행정의 달인인 이지사에게 ‘머리’와 ‘논리’로 인정받기란 쉽지가 않다. 이지사가 취임 초기와는 달이 악화된 여론에 시달리면서도 변함없이 자신에 대한 ‘매니아’층을 유지하는 배경 역시 요소요소의 인사들을 거느리는 독특한 ‘관리’에 있다.

만만치 않은 이지사 책임론

 원흥이 사태는 이지사의 이런 도정 스타일에 분명한 한계를 안겼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이지사의 숙시주의가 시민단체의 색깔있는 문제제기에선 통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이지사가 원흥이 문제를 장기간 방치한 것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극단적으로 말해 시민단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도정과 관련된 집단 민원제기에 지사가 오랫동안 오불관언으로 일관한 것은 도정 책임자로서 적절치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사태 초기에 당사자간 해결을 주문하며 ‘제 3자’의 입장을 강조한 처사 역시 시민단체를 자극했다. 충북도는 문제가 된 택지개발의 인허가권자로서 분쟁의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원흥이 문제가 무려 1년이 넘는 소모전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이지사의 ‘책임론’이 현재로선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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