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6개월 교직생활, ‘부끄러운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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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6개월 교직생활, ‘부끄러운 인사를 올립니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5.09.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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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삼보초교 송문규 교장 퇴임식, 교사·학부모 한마음으로 준비

“학교수박(7통) 따고 30통 지원받아 학생과 교직원 800여명이 수박파티를 했다. 학교에서 딴 수박이 예년에 비해 작았지만 당도는 최고였다” 증평 삼보초등학교의 ‘수박데이’를 설명한 카카오스토리 글이다. 이 글을 쓴 이는 지난달 28일 퇴임식을 가진 송문규 전 교장(63)이다. 학교 꽃밭과 숲가꾸기에 앞장서며 직접 텃밭을 일구어 교직원 점심 상에 고추, 오이가 빠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저런 교장 선생님이 또 있을까 싶죠. 학교 발전을 위해 정말 ‘혼신을 다 하신 분’이었고 학부모들도 그런 점을 잘알기 때문에 퇴임식도 같이 준비하게 됐어요” 장세윤 교무부장의 말이다. 삼보초 교사 30여명은 이미 방학전 퇴임식 노래곡목을 전달받아 개인연습을 했다. 24일 개학과 함께 합창과 댄스연습을 시작했다. 청주 퇴임식장 무대에서 ‘언젠가는’ ‘사랑합니다’ 같은 이별노래와 함께 경쾌한 댄스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퇴임교사를 위한 작은 무대가 특별한 경우는 아니예요. 하지만 이번처럼 교사, 학부모가 한마음으로 준비한 것은 후배교사들에게 특별한 경험”이라고 장 교무부장은 덧붙였다.

3년전 삼보초교에 부임한 송 교장은 18가지 학교 현안사업을 정리한 종이를 양복 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접은 곳이 헤지면서 18가지를 마쳤고 이후 50가지로 사업이 늘어났다는 것. ‘날마다 기도하고 담당자에게 수없이 찾아가 사정한 사업도 있다’도 카톡에 소감을 적었다. 삼보초 부임 당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상머슴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매일 새벽부터 출근했다. 회의나 출장이 아니면 작업복을 입은채 학교 인부처럼 일했다. 송 교장의 타고난 부지런함은 다 닳아 헤진 운동화 뒷축이 그대로 보여 준다.

‘혼신을 다한’ 교장은 퇴임 4일전 학부모들에게 인사장을 보냈다. ‘부끄러운 인사를 올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교직을 천직으로 마중물처럼 살고 싶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인사말의 마무리는 “그동안 저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들은 용서하여 주시고, 수없이 많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가슴에 깊이 간직하여서 남은 생애만은 부끄러운 삶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좀 더 신경을 쓰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였다.

40년 6개월간 재직중에 300회에 달하는 헌혈을 실천한 봉사자이기도 하다. 퇴임식에 소요된 ‘마지막 만찬’ 식비도 자신이 결재했다. 아낌없이 주며 떠나는 그의 인사장은 ‘부끄러움’으로 시작해 ‘속죄’로 끝을 맺었다. (송 교장 퇴임식에 대한 제보(?)는 도의회 교육위원회 이광희 의원의 페북 글이었다. 행여, 거절할까 싶어 주인공인 송교장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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