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이 아니라 자유가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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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이 아니라 자유가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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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숙(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저는 예술인으로서 오랫동안 지속된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의 현실을 여성농민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린 공연에서도, 광주의 5.18민주영령을 추모하며 민주화와 통일의 꿈을 그리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도 저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공연의 길을 막아서는 눈앞의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국보법이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교수요 무용가인 내가 추상성이 많은 무용 공연 때문에 국보법의 서슬에 이렇게 눌리는데 다른 분야에서 민주와 통일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들은 얼마나 큰 위험에 직면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정의와 겨레의 염원은 점차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금강산 뱃길이 처음 열릴 때 남북화해의 그 가냘픈 통로 앞에서 민족의 비원을 생각하며 벅찬 감동을 안고 통일춤 공연을 했습니다. 금강산 온정리에서도 처음으로 통일춤을 공연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공권력의 제제도 마음의 부담도 없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청주에서 겪었던 시대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를 하나 전하고 싶습니다. 북한이 프랑스와 합작으로 만들어 국제 에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라는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저의 제자 한 사람이 교회 아이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북한 영화를 보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선생님과 기관으로부터 추궁을 당했고 어린이들은 저의 제자를 가르켜 “삼촌이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관에서는 엉뚱하게도 영화를 상영한 저의 제자가 아니라 서울에서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님의 동생을 연행하여 조사를 벌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까운 사람을 통칭하는 삼촌이라는 말만 듣고 무조건 목사님의 동생을 강제로 연행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통일부 홈페이지 자료실 북한 영상 관련 항목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올라가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계속하여 적대시하고, 남한 사람들도 계속하여 북한을 적대시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 할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이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군사적 긴장을 높여가고, 남한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응징과 제압에서 우월감과 쾌감을 느낀다면 한반도에 희망은 없습니다. 국보법은 반공이 아니면 안될 뿐 만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요체인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다름은 틀림과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국보법은 다름을 무조건 틀림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 할 때 비로서 공존이 가능하다는 보편적 가치조차 부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에 앞서가지는 못해도 시대에 뒤쳐져서는 누구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입장이 시대의 요구와 속도에 발맞추어 나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음을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절대적인 힘은 전쟁의 방식이 아닌 평화적 수단으로, 어느 한 체제를 급격히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공존을 통해 민족의 이익을 중심으로 번영을 도모하는 데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공존의 길이 아니고 대립 존속의 길인 국보법의 길로는 민족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국보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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