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개발, 원주민 재정착률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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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개발, 원주민 재정착률 낮췄다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04.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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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공까지 10년…원주민은 헐값 보상, 개발이익은 투기꾼에게
운동동 고령 원주민 43명 사망…조합 “개발사업과 연관” 주장

방서지구와 동남지구 주요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1990년대 청주시에 편입됐지만 지금까지도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그러하듯 노인인구가 많다. 이런 특성에다 두곳 모두 긴 사업기간으로 인해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동남지구주민협동조합은 사업지연으로 인해 고령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개발사업과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용암동 소재 모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이주자택지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건 이상 거래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 사진설명-동남지구주민협동조합에 따르면 조합이 구성된 2012년 이후 지금까지 43명의 원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들은 이들의 죽음이 개발사업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조합이 마련한 위령제.

이주자택지 1억 2500만원에 거래

이주자택지는 일명 딱지로 불리는 점포 겸용 택지를 말한다. LH충북지역본부 관계자는 “개발지역 내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원주민에게 이주자택지가 주어진다. 전체 대상은 700세대 정도지만, 자격 심사를 통해 500세대가 이주자택지를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나오지도 않은 이주자택지가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법이다. 원주민이 이주자택지를 받을 경우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택지지역을 분양받을 때 조성원가에서 생활시설비용 등을 감면받아 일반적인 분양가보다 통상 20% 정도 싸게 살 수 있는 혜택이 있다. 1층을 상가로 만들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시장성이 있는 경우 이주자택지의 가치는 치솟는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동남지구 이주자택지 거래가격은 1억 2500만원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관계자는 “이주자택지 거래는 불법이다. 하지만 모든 택지개발지역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거래로 원주민들에게 1억 2500만원의 금전적 이익이 발생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양 통장은 “LH가 중간에 사업을 중단하면서 주민들의 동요가 일어났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언제 재개될 지도 모르는 사업을 기다리지 못하고 헐값에 이주자택지 권한을 넘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용암동으로 이주한 김 모 씨는 “운동동에 살 때는 겨울에 기름살 돈만 있으면 됐다. 밖에 나오니 수입은 없고 돈 쓸 일만 있다. 2009년에 받은 보상금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노인들에게는 당장 쓸 돈이 필요했고, 투자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불법적인 이주자택지를 산 것이다.

양 통장은 원주민의 90%가 이주자택지 권리를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상 초기에는 이주자택지 대신 이주비 1000만원을 받고 만 경우도 허다하다. 1억 2500만원에 거래된다는 이주자택지는 이미 원주민 손을 떠난 다음이다. 원주민들은 그 보다 훨씬 못한 금액에 권리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고향 잃고 거지됐다”

방서지구도 다르지 않다. 최근 본보가 연속 보도했던 시세차익을 누린 조합원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아니다. 원주민 상당수는 이미 2009년 이전에 보상가를 산정해 90%를 받았다. 한 원주민은 “10년 세월이다. 그 돈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냐. 다시 사업이 활기를 뛰면서 환지를 받으라고 하지만 이제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원주민은 사업 초기 저평가된 토지보상비를 받았고, 개발 이익은 이후에 참여한 외지인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원주민들의 설명이다. 방서동 마지막 통장인 노복순 씨는 “고향 잃고 거지돼서 나왔다”고 개발사업을 원망했다.

원주민이면서 조합장을 맡기도 했던 김근호 씨도 “개발계획이 세워진 상태라서 어차피 마을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 원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받길 바라고 일을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두 사업지구 모두 착공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원주민이 돌아올 수 있기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한편 원주민 200여가구가 만든 동남지구조합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운동동 원주민 중에서만 43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근우 조합장은 “물론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 노인들로 연관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르신들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 조합장은 “긴 사업기간으로 어른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싶은 마음에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운동동 근처인 용암동·영운동에서 살고 있다.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일거리가 없어지자, 우울증을 호소하시기도 하셨고, 급격히 외로워하셨다. 이주 전에도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이런 점들이 어르신들을 더 빨리 늙게 하고, 이 세상과 멀어지게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원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원들은 지난 3월에는 원주민 사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원주민 재정착률 높일 해법없나?

소규모로 전환, 뉴스테이도 각광…정부, 도시재생사업에 무게

 

동남지구와 방서지구같은 택지개발·도시개발과 함께 재개발로 대표되는 개발(정비)사업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원주민의 재정착률이다. 개발사업을 통해 주거 환경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원주민은 살지 못하고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착률은 시기별, 사업별로 차이가 있지만 학계에서는 전국 평균 30.5%에 머무르며 세입자의 경우 16%로 보고 있다. 그렇다보니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고, 소규모 또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일시적이지만 택지개발을 중단했다. 반면 최근에도 도시재생사업지역 33곳을 확정해 범정부적 지원을 약속했다. 도내에서도 제천시와 충주시가 중심시가지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됐다.

소규모개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민공동체 사업방식의 주거환경관리사업은 대규모 개발과 달리 10~20가구의 주민들이 업체를 선정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하고 이 기간동안 순환형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추진할 경우 다시 재개발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어 주민공동체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방식을 채택한 대전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소규모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인천 재개발지역에 도입된 민간임대 아파트 ‘뉴스테이’도 관심을 모은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으로 민간임대지만 보증금과 임대료를 크게 낮춘 뉴스테이는 5130세대가 지어지는 인천 십정2구역에 들어선다. 규모는 3000여 세대로 전체 아파트의 60%에 달한다. 보통의 개발지역에서 임대주택이 10%미만인 점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분양주택과 달리 투자자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고, 정부와 지자체는 용적률 상향 등의 지원을 통해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주민 입장에서는 분양 아파트보다 부담이 적어 재정착률이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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