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강제병합 맞서 단식 23일만에 순도한 대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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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제병합 맞서 단식 23일만에 순도한 대유학자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6.08.3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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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화원 ‘의당 박세화 특별전’ 개최, 항일의병 조직 ‘건국훈장독립장’ 추서
▲ 의당 박세화 영정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에 맞서 단식으로 저항하다 숨진 애국 열사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1834~1910)를 기리는 특별전시회가 제천에서 열렸다. 제천문화원(원장 이해권)은 지난 26일부터 3일간 제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의당 박세화 특별전’을 열어 의당과 의병들의 유품을 전시했다. 특히 28일은 의당이 순국한 지 106주기가 되는 의미있는 날이다. 의당은 일제에 단식저항 23일만인 1910년 8월 28일 순도(殉道·정의나 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했다.

의당은 1834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출생해 1886년 제천 청풍 장선으로 이주했다. 제천 덕산면 억수리 용하구곡(用夏九曲)을 설정했고,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用夏影堂·병산영당)을 창건해 20여년간 문도들을 지도했다. 1905년 문도들과 함께 월악산중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벌였고 일제 한성사령부에 연행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마침내 1910년 일제 강제병합이 노골화되자 음성 만생산 창동(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서 “선비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단식에 돌입했다.

의당의 단식 순도 과정은 그의 제자들이 엮은 ‘창동일기(昌東日記)’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창동일기는 세명대 김종수 교수가 2014년 ‘의당 박세화의 단식 순도일기 창동일기’란 제목으로 국역 출간했다.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기 하루 전날인 8월 28일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의당은 죽음을 맞았다. 창동일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제천문화원 주최로 제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26일부터 3일간 열린 ‘의당 박세화 특별전’ 모습.

“진시. 선생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화(化)할 뜻을 보이셨고 마침내 서거하셨다. 전날 밤에 땅이 뒤흔들리는 지진과 함께 짙게 낀 엄청난 안개가 걸치고 있었다” 의당은 단식 중에도 50여명의 문인과 방문객에게 강론했고, 죽음을 말리는 장남을 훈계하며 순도의 뜻을 꺾지 않았다. 제자인 직당 신현국은 “도(道)를 위해 충절을 바쳐 숨지신 분은 오직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표현했다. 1962년 정부는 의당의 순도를 기려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 제천 병산영당에서는 2014년 ‘의당 박세화선생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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