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은바위성(黑城)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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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은바위성(黑城)비밀
  • 이상훈
  • 승인 200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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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열세번째이야기
"헉! 헉! 아, 아이구! 힘들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벌구님은 거친 산길을 새처럼 훨훨 날아가듯이 가볍게 올라가요?“

뒤따라오던 처녀 여우리가 숨을 할딱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내겐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오. 천길만길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도 내 집 내 안방처럼 드나드는 사람인데 이 정도 가지고서야 어찌 힘들다고 하겠오?“

벌구가 뒤돌아서가지고 지금 숨가쁘게 올라오고있는 여우리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 아유... 이, 이제 정말이지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잠시만 멈췄다 가요.”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근처 적당한 풀밭을 골라 묵직한 엉덩이를 털썩 얹었다.
정말로 힘에 겨운지 그녀의 얼굴 위에는 땀이 비오듯이 줄줄 흘러서 몸에 걸치고있는 녹색 나뭇잎 위로 뚝뚝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허허... 이렇게 약골이시다니... 그래가지고서야 나중에 시집가서 어디 애라도 하나 제대로 낳겠수?”

벌구는 미소지으며 천천히 다가와 마치 녹색 풀더미 속에 푹 파묻힌 채 숨을 헐떡거리고있는 여우리 처녀를 몹시 안됐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어머머... 애라니요? 처녀한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따로 있는거지... 어떻게 그런 거친말을 함부로 하시죠? 북쪽 남자들은 당신처럼 모두다 입이 그렇게 거친가요?”

여우리 처녀가 여전히 풀밭 위에 주저앉은 채 벌구를 무섭게 흘겨보며 말했다.

“입이 거칠기 보다는 솔직한 편이지요. 지금 나처럼 말입니다. 하하하...”

벌구는 유쾌하게 웃음을 한번 터뜨리고나더니 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고쳐잡으며 다시 말했다.

“자, 어서 갑시다! 사람이 이렇게 자꾸만 쉬려고 들다보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법라오.”

“하, 하지만... 제가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요.”

“어허! 그럼 어쩌란 말이요? 지금 날보고 당신을 업고서 올라가 달라는 말이요?”

“어머머! 업, 업다니요? 누가 누구를 업어요?”

여우리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자, 그럼, 나 먼저 올라갈 터이니 힘이 다시 생기거들랑 천천히 뒤따라오십시오.”

벌구는 정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고는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겨갔다.

“어머머, 참! 그 그런데... 벌구님! 주의하셔야해요. 자칫하다 산돼지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어요!”

이마 위에 줄줄 흐르고있는 땀을 두 손등으로 번갈아가며 연신 훔쳐대던 여우리 처녀가 별안간 겁먹은 소리로 벌구를 향해 외쳤다.

“산돼지요? 아니, 갑자기 산돼지는 무슨....”

목적지를 향해 산길을 다시 걸어올라가려던 벌구가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제가 언젠가 한번 이곳에 올라왔다가 별안간 산돼지 큰놈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찌나 무서웠던지.... 정신없이 막 도망쳐 내려와서 간신히 살아나기야했지만 어휴~ 그때 그 무서웠던 일을 다시 생각만 해도...”

여우리는 그때 그 아찔하고도 끔찍했었던 순간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어대며 진저리를 쳐댔다. 그 바람에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던 나뭇잎들이 일시에 파르르 흔들려댔다.

“허허허... 그것 참 이상하네요? 산돼지를 만나면 얼른 잡아서 구워먹을 생각을 해야지 도망을 왜 칩니까?”

벌구가 다시 큰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놈이 여간 컸었어야지요. 그냥 척 보기에도 아주 집채만큼 컸다구요. 허기야 제 입장으로는 조그만 토끼나 다람쥐, 강아지만한 산돼지를 만났더라도 겁이나고 무서워서 당장 도망을 쳤겠지만..."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몰아내 쉬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거친 산길을 올라가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고 힘이 드는지 앉아있던 풀밭에서 도무지 엉덩이를 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산돼지가 나타나건 뭐가 나타나건 간에 저 검은바위로 되어있다는 흑성(黑城)까지 가보기로 작정을 했다면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밀고나가야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천천히 뒤따라오십시오. 그럼 저는...”

벌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예의 그 민첩한 동작으로 아까 가던 그 산길을 다시 휙휙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 잠깐! 벌구님!”

풀밭에 앉아있던 여우리 처녀가 조금 당혹스런 목소리로 벌구를 향해 외쳤다.

“왜요?”

“아니, 저를 그냥 이대로 놔두고 혼자 가시기예요?”

“어허! 그렇게 푹 쉬고 싶어하는 분을 제가 어거지로 끌고 올라갈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벌구는 이렇게 말하며 두 팔짱을 껴보였다.

“아아앗!”

갑자기 여우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왜 그래요?”

“조, 조심...”

여우리는 너무 크게 놀란 탓인지 그저 손을 앞으로만 내민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뭘...”

벌구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머리를 돌렸을 때에는 후다닥 달려오는 커다란 산돼지가 바로 그의 코앞에 보여졌다.

“으아아악!”

벌구는 비명을 크게 내지르며 그 자리에 발랑 드러눕듯이 쓰러졌고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산돼지는 그의 몸 위를 짓밟으며 지나쳐 버렸다.

“어머머! 아유! 이를 어째! 어째!”

여우리는 얼떨결에 풀밭에서 일어나가지고 두 발을 동동 굴려댔다.
그나마 무척 다행스럽게도 그 산돼지는 가속도가 붙어져서 저 만치 더 달려가다가 별안간 커다란 나무 등걸을 정면으로 들이받고는 데굴데굴 돌처럼 굴러가 계곡 깊숙한 골짜기에 푹 쑤셔박혔다.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달려든 산돼지에게 그대로 짓뭉개지듯이 깔려버린 벌구가 문제였다.
심하게 다쳤거나 정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는지 벌구는 쓰러진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벌구님! 벌구님!”

여우리는 크게 울부짖으며 벌구에게 달려갔다.

'음, 음, 음....'

그제서야 벌구는 가벼운 신음을 토해내며 조금씩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벌구의 손과 가슴팍에는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배어나오고 있었다.

"어마맛! 이, 이걸 어째.... "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 여우리는 사방 주위를 둘러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누가 좀 와줘요! 사람이... 사람이 죽어가요! 사람이!"

여우리는 울쌍을 지으며 악을 쓰듯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지만 그러나 인적이 뜸한 이런 곳에 어느 누가 별안간 나타나가지고 도움을 줄리 없었다.

'으으으음...'

누워있던 벌구가 오만상을 잔뜩 찌푸려대더니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과 가슴팍 언저리에는 붉은 선지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머머머! 이를 어째! 흑흑흑...."

여우리는 벌구의 이런 처참한 몰골을 보자 울음을 왈칵 크게 터뜨렸다.

"자, 어때요? 먹음직하죠?”

뜻밖에도 벌구는 갑자기 미소를 씨익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고있던 여우리가 난데없는 벌구의 말에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자, 이거 말이예요. 바로 이거...“

벌구는 뭔가를 꽉 움켜쥐고있던 오른쪽 손을 번쩍 치켜들어보였다.
그의 오른 손에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있는 길쭉한 무슨 고기덩어리 같은 것이 꽉 움켜쥐어져있었다.

"어머머! 그, 그게 뭐예요?'

여우리가 몰었다.

"산돼지 X이에요. 놈이 쓰러진 내 몸 위를 짓밟고 막 지나가는 순간, 내가 재빨리 손으로 콱 움켜잡아 쑥 뽑아버렸지요. 아무튼 저놈이 수컷이었기에 망정이지, 두 다리 사이가 허전한 암컷이었다면 내가 아주 크게 곤란할 뻔 했소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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