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검은바위성(黑城)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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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검은바위성(黑城)비밀
  • 이상훈
  • 승인 2004.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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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스믈두번째이야기
마침내 검은바위성 앞으로 다가온 벌구와 여우리.
이 거대한 검은 돌무더기는 두사람에게 너무너무 크게만 보여졌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제각각 웬지 모를 가벼운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있는 듯했으니, 특히 여우리는 너무나 급작스런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는지 울음을 크게 터트리려다가 이를 악물어가며 애써 참아내려는 기색이 얼굴 위에 아주 역력해 보였다.

“으흠흠....”

벌구는 조금 전에 왔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이십여자 이상 족히 되어보이는 높이의 이 거대한 검은바위성(城) 앞을 잠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얼마나 짜임새있고 튼튼하게 쌓아올린 것인지 가운데 부분이 조금 허물어져 내린 것 이외엔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여지는 돌 구조물!
이것은 돌아가신 벌구 아버님의 생전 피와 땀, 그리고 엄청난 노고가 그대로 배여져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벌구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살아 생전 그 숨결과 체취가 그대로 물씬 묻어나오는 것만 같아 가슴이 크게 뭉클해지고 또 숙연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편,
벌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구석이 있었다.

참 이상하다!
아버님께선 꽃다운 젊은 시절에 왜 하필 이곳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애써 저런 걸 만들어 놓으시느라 고생하셨을까?
그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부족들 간에 싸움이 한참 얽히고 설켜있기에 무예가 남달리 출중한 아버님께서 이곳 남쪽에까지 일부러 내려와 한가로이 이런 축성(築城)일을 하실만한 겨를이 전혀 없으셨을 터인데...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제자를 모아 무예 수련을 시켜서 북쪽으로 데리고 가실 생각을 아버님께서 하셨을리는 절대 만무하고...

벌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다가 여우리를 힐끗 다시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검은바위성 어느 한면에 시선을 똑바로 꽂은 채 서있었다.
벌구는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천천히 이렇게 입을 열었다.

“맞아요. 틀림없어요! 지금 저 검은 돌로 촘촘하게 쌓아올린 구조물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평소 제자들에게 무예 수련을 시키던 장소에 있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해요. 아니, 흡사하다기보다는 거의 똑 같네요. 위치만 서로 다르다 뿐이지... 지금 저것은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돌멩이들을 아무렇게 마구 갖다가 쌓아놓은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로 저 안에 들어가 보면 제법 널찍한 공간이 있답니다. 돌침대가 놓여져있어 잠을 잘 수도 있고, 간단한 취사를 할 수있도록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있으며, 여러명이 한꺼번에 모두 모여서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을만한 여유 공간도 마련되어있지요."

"저, 벌구님! 죄송하지만 저는 잠시 아래로 내려가 보겠어요.”

여우리는 갑자기 침울해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네에? 왜요? 혹시, 아까 산돼지 그걸 구워잡수신게 탈이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지금쯤 젖었던 제 옷들이 다 말랐을 터이니 그걸 제가 가질러 가려구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여우리의 얼굴은 어느 누가 손가락 한 개만 살짝 갖다대도 크게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 보였다.

"아 아니, 난데없이 옷이라니요?”

“보다시피 지금 이 나뭇잎 옷은 너무 거추장스럽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얼른 내려가서....”

“어허! 참으로 별일이네요! 조금 전까지 저랑 이곳에 빨리 가야만한다며 그토록 성화를 부려대던 사람이 이제 갑자기 어디를 갔다오겠다니요?”

벌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여우리 얼굴을 다시 한번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럼, 제가 내려가지말고 그냥 있을까요?”

여우리는 여전히 울음을 꾹꾹 참아내는 듯한 표정을 애써 지어가며 벌구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야지요. 위험한 저곳을 어떻게 혼자서 갔다가 온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한가한 몸이 아니에요. 언제까지나 왔다갔다 한가로이 제자리 걸음을 할만한 입장이 못된다구요. 자,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여우리 당신이 내게 하고싶은 얘기,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속시원히 얼른 털어놔 주세요."

벌구는 여우리가 은근히 자기를 가지고 놀려고 든다는 기분이 들기에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 알았어요. 그럼, 제가... 벌구님께 속시원히 모두 얘기해 드리지요. 아, 그런데... 벌구님!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 먼저 물어보겠어요. 지금 저 검은 돌로 쌓아놓은 바위성을 보자마자 벌구님께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번쩍 떠오르셨어요?”

여우리가 벌구를 빤히 올려쳐다보며 이렇게 다시 물었다.

"저 검은 바위요? 으으음... 그 글쎄요. 그러고보니 제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긴있구만요.“

벌구가 작은 눈을 더욱더 작고 가늘게 떠보이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시죠?"

여우리가 크고 예쁜 두 눈을 또다시 반짝거려가며 벌구에게 물었다.

"저 검은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젊은 여인네의 가뭇가뭇한...."

"어머머! 그, 그만 하세요! 제발!"

갑자기 여우리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벌구의 다음에 이어지려는 말을 얼른 가로막았다.

"왜요?"

"저, 보나마나 지금 아주 이상야릇하고도 저질같은 말씀을 하시려는 거죠? 전 다 알아요. 알만한 건 다 안다구요. 아무리 이런 산골짝에 쳐박혀서 살아가고는 있는 몸이지만 그 정도의 눈치 코치도 없는 줄로 아세요?"

여우리가 갑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성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그것 참 이상하게 말씀하시네요? 저는 단지 저 거뭇거뭇한 걸 보고 젊은 여인네의 칠흙같이 검은 머리가 생각난다며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 말이 그토록 저질스럽고 이상야릇하게 느껴지시나요?“

이번엔 오히려 벌구가 이상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우리를 빤히 내려다 보았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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