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 사이
상태바
훈육과 학대 사이
  • 충청리뷰
  • 승인 2017.12.20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아롱 변호사

미운 네 살, 이제 새 해가 되면 다섯 살이 될 아이가 자기 나름 이유를 기반으로 한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게 화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리는 방법의 훈육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혼낼 때 감정을 담지 않으려 노력해보지만 나도 감정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상황에서 차분히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목소리는 높아져서 화가 넘치고, 아이의 양 어깨를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어떤 때는 아이가 잡은 물건을 필요 이상의 힘을 써서 빼앗아버리고, 나도 모르게 아이를 밀어버리게 될 때도 있다. 만 4세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내가 가한 물리력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진 뒤,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놀라고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아이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잘못에 대한 이야기는 할 사이도 없이 아이를 안아주게 된다.

그쯤 되면 애초에 아이를 훈육하려던 것인지, 내 감정을 풀려던 것인지, 지금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이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내 잘못에 대한 배상을 재빨리 줌으로써 죄책감을 최소화하려는 건지 몹시 애매해진다. 아이는 엄마가 다시 평소처럼 나를 안아주는 일에 안도하겠지만, 잘못에 대한 생각보다는 화난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는 충격만 기억하지 않을까.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가 이루어져 아이와 행위자인 부모를 분리하는 임시조치를 하고 나면 으레 행위자인 부모는 ‘당신들이 뭔데 내가 내 자식을 가르치는 일에 참견하느냐’며 화를 낸다.

법원이 명하는 임시조치에 따라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된 훈육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나지만 내가 조금 심하기는 했지’라며 마지못해 상담과 교육에 응하는 사람, 그리고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동보호사건 심리기일에까지 화를 내다가 판사님께 크게 혼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주 명백한 학대가 아닌 한, 때로는 명백한 학대로 보이는 경우에도 대부분의 행위자들은 ‘학대가 아닌 훈육이었다’거나 ‘훈육의 의도로 한 행동이 지나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훈육은 훈육이고, 학대는 학대이다. 아이는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한 생명체이지만 하나의 인격체임이 분명한데, 아이를 부모에게 속한 종물(從物)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여자도, 동물도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은 세상에서 훈육을 위해서 아이는 때려도 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이는 성인여성보다 훨씬 약하고, 반려동물보다 소중한 존재인데.

훈육과 학대가 같은 선상에 놓인, 그 사이에 흐릿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훈육을 빙자한 학대는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를 부모에게서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보호와 가르침이 필요하지만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로 생각한다면 여성이나 동물을 때리면 안 되는 것처럼 아이도 당연히 때려서는 안 될 존재로 본다면, 훈육과 학대는 애초부터 다른 선에 서 있는 개념이 되지 않을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 지 만 3년 3개월이 되어가고, 빠른 속도로 관련 제도와 절차가 내실 있게 갖추어져 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건수 대비 허수의 비율도 높지 않다고 한다.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