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상태바
마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충청리뷰
  • 승인 2017.12.29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에서 실질적인 생활공동체 이루는 단위는 자연마을

나는 마을에 산다. 요즘은 천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 서울에서도 ‘마을’이 이야기되고 있다지만 ‘사람이 자연적으로 모여 생활을 이루는 취락 지역’이라는 마을의 사전적 의미가 가리키는 곳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덕실마을과 같은 시골마을임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농촌의 ‘마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바로 ‘하나의 마을’을 부르는 여러 가지 명칭에 관한 것이다. 모르고 산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단지 거주 지역으로 농촌을 선택한 것이 아닌 ‘농촌 마을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바로 법정리-행정리-자연마을의 구분에 대해서 말이다.

법정리는 말 그대로 법에서 정한 마을단위를 의미하며 주소 지번의 기준이 된다. 내가 사는 안남면 도덕2리나 옆 마을 도덕1리나 법정리로는 그냥 ‘도덕리’이다. 그래서 우리집 주소도 ‘도덕리 000번지’이다. 하지만 농촌에서 ‘마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개념은 ‘행정리’이다. 누가 그렇게 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남면에 마을이 몇 개 있느냐는 질문에 가장 통상적인 답은 12개, 즉 12명의 이장님이 이끄는 12개의 마을(행정리)이 있다는 대답일 것이다.

자연마을 기준이 된 ‘경로당’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촌마을에서 정말 실질적인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단위는 ‘자연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어원에는 ‘물’이 있고, 이를 통해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짐작은 ‘자연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면 곧 ‘확신’으로 바뀐다. 바로 대부분 자연마을엔 공동우물이 있고 그 물을 같이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데서 마을이 생겨났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있은 우리 마을 총회 모습. 시골마을 회의는 특별한 안건도, 회의문서도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다 무작정 박수로 결론이 나는 때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을의 회의결과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오랜 시간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주민분들이 만들어온 나름의 소통 방식이고 ‘우리 마을과 같은 참 좋은 마을’은 대부분의 경우 대다수 마을 주민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마을의 일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도덕2리의 경우 자연마을도 덕실마을 하나라 ‘도덕2리=덕실’로 설명되지만 옆 마을 도덕1리의 경우는 자연마을이 서당골과 도근이마을 이렇게 두 개이다. 이 두 개의 자연마을은 행정리 상으로는 같은 도덕1리에 속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우물이 사라진 동네가 많기 때문에 자연마을을 구분하는데 경로당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경로당은 보통 자연마을 단위로 운영되는데 딱 마을 노인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 옛날 우물물을 길으러 가는데 마차를 탔겠는가, 차를 탔겠는가? 하나의 우물을 중심에 두고 걸어서 물을 길으러 갈 수 있는 집까지만 하나의 자연마을, 즉 생활공동체로 묶이는 이치는 지금 노인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경로당을 짓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도시에서 동네 이름은 아주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동네 집값이 어떠냐에 따라 거기 사는 사람의 소득수준을 어림짐작하게 해주는 명칭일 뿐, 그 사람이 어떤 자연적·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설명해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농촌마을에선 내가 살아가는 마을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그 사람이 어떤 자연적·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림짐작해볼 단서를 얻게 되고 ‘마을’ 자체가 화두가 된 무수한 이야기 가지들이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농업에 종사한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마을에서 살아간다, 마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말로 풀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다수 농촌마을은 긴 세월을 통해 형성되어온 그 마을 특유의 어떤 문화나 집단성, 공동체성이 살아있다. 게다가 ‘집성촌’이란 명칭이 보여주듯 개별 가구인 듯 보이나 알고 보면 촘촘한 혈연관계로 엮여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 때문에 ‘마을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은 결국 평생을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마을 주민들에 비해 아주 이질적 존재인 내가, 그 마을 특유의 어떤 문화, 집단성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하는 문제일 수 있다.

마을공동체를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

무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을에 녹아들면 마을살이가 아주 즐거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님을 무수히 많은 귀농귀촌 실패 사례, 특히 ‘기존 주민과의 갈등에 의한’ 실패 사례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적한 전원생활을 즐기러 농촌에 왔을 뿐, 마을사람들과 굳이 어울려 살고 싶은 마음이 없고 마을사람으로서 어떤 정보를 얻거나 혜택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귀농귀촌으로 농촌에 내려가 ‘마을사람’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고 마을이란 공동체가 아주 긴 시간 일궈놓은 어떤 유무형적 자산을 공유하고 싶다면 ‘어떤 마을에서 살아갈 것인가’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라 조언하고 싶다. 이것은 농촌에 내려가 어떤 농사를 짓고 어떤 집을 짓고 살 것인가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마을, 나쁜 마을을 구분할 어떤 객관적 기준이란 것도 없으니 더더욱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연재 글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처럼 이질적인 존재들이 때론 시골 마을에서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불편함을 안겨드릴지언정 지금의 농촌 마을은 새로운 사람들,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너무도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옥천은 물론이고 농촌의 많은 마을들이 오랜 문화와 관습을 조금씩 바꿔가면서라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마을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말 농촌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기존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은 조금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이러한 마을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지 이야기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