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의 사랑과 공격성 그리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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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의 사랑과 공격성 그리고 거짓말
  • 충청리뷰
  • 승인 2018.01.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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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존재에 대한 세 가지 거짓말>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헝가리 출신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소설 <존재에 대한 세 가지 거짓말>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비밀 노트로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이야기다. 전쟁이 일어나고 공습을 피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 집으로 온 쌍둥이의 이야기는 첫 장부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들에게 할머니는 생존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산을 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감각을 없애야 하며, 서로의 몸에 신체적인 고통을 가하면서 감정의 볼륨을 소거해야 했다. 오로지 비밀노트를 통해서만 쌍둥이의 처참한 현실이 담긴다.

2부는 타인의 증거이다. 국경을 넘은 클라우스와 헤어진 루카스의 이야기다. 한 명은 남기로 하고 한 명은 국경을 넘기로 한다. 분신처럼 한 몸으로 지냈던 한쪽이 떨어져 나가자 남은 한쪽인 루카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증거를 찾아 필사적으로 거리를 헤맨다.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대상을 통해서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이면을 마주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존재 증명을 위해서는 타인의 향기가 필요하다. 존재는 타인의 증거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관계 속을 배회한다. 존재 증명을 위한 무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대상을 찾아 피학적인 혹은 가학적인 관계 맺기를 반복한다. 루카스와 마티아스의 관계가 그러하고, 야스민과 그의 아버지가 그러하고 빅토르와 그의 누나의 관계가 그러하다.

야스민은 마티아스의 엄마이다. 마티아스는 근친상간으로 얻어진 아이이다. 마티아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할아버지인 셈이다. 마르티스는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태어났으며 마티스의 장애는 근친상간에 대한 대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경계 곧 금기, 그 부분에서 태어난 생명, 그 어떤 것에 대한 질문이다.

밤 새우며 읽을 만한 책

3부에 와서야 소설의 윤곽을 잡을 수 있으며 기막힌 반전으로 잠시 아찔해진다. 1부와 2부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존재에 대한 세 가지 거짓말은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는 것, 국경을 넘었을 때의 나이가 15세였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국경을 넘은 것은 클라우스가 아니라 루카스였다는 것이다.

죽지 않은 아버지의 존재, 자신들을 사지로 놓아두고 돌보지 않은 아버지의 부재와 조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찍 어른이 되어야만 했기에 나이는 경험에 붙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거짓말이다. 국경을 넘은 클라우스의 삶에서도 그려지듯이 그곳도 사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아있는 자(클라우스)는 떠난 자(루카스)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루카스로 부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루카스가 나타났을 때 그를 부인하고 받아주지 않는다. 사실 이들이 헤어진 것은 전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3부에서 눈치챌 수 있다.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가 쏜 총알이 루카스에게 튕겨진다. 루카스가 입원한 병원이 폭격으로 무너지고 행방은 찾을 수 없게 된다. 한쪽을 잃은 클라우스는 정신이상자가 된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어머니는 루카스만을 그리며 그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어머니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는 찾아온 루카스를 거부한다. 존재의 자리를 상실한 루카스는 열차에 뛰어들어 죽는다. 그리고 클라우스 역시 자살을 결심하고 이야기가 끝난다.

한번 잡은 책은 다시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읽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책이다. 존재에 대한 여타의 거짓말은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 다시 말해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받기 위해서나 사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 사랑을 위해서는 특히 그것이 극한의 상황일 때는 더더욱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공격성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백일몽을 꾸는 것, 상상의 공간으로 자신의 감각을 도피시키는 것, 때때로 그 도피가 생활의 전리품이 되어 우리에게 오래오래 남아 떠돌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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