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건 재밌고 먹으면 든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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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건 재밌고 먹으면 든든하지
  • 충청리뷰
  • 승인 2018.01.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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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소만 달리하면 고기·김치만두 등 무궁무진한 요리가 되네

 

예전부터 습관적으로 새해가 되면 만두를 빚는다. 대개는 김장이 끝나면 남았던 묵은지를 한 번에 해결해야하는 어머니로서는 만두만한 게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겨울 내내 먹을 만두를 빚었던 탓인지 나도 어느새 만두를 빚곤 한다.

요즘처럼 식재료가 풍부한 세상에 살다보니 나는 주로 고기만두, 새우만두, 고추잡채만두 등등 다양한 만두들을 만드는 편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평생 김치만두만 만드셨다.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만두는 묵은지를 빨아서 다지고 마늘과 대파를 다진 것이 기본베이스였고 여기에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등등의 양념을 하셨다. 집에 돈이 있으면 돼지고기 간 것을, 고기 살 돈이 없으면 두부를 으깨서 넣는 게 차이가 날뿐 그야말로 김치만두다.

어렸을 때 만두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을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물었다.
“아니 다시 고춧가루 넣을 거면 왜 빨아요..?”
어머니는 “묵은지 양념은 그때그때 맛이 달라져서 그냥 내가 편하게 내 입맛대로 하려고 다시 양념하는 거야..”
그러고보니 어머니는 김치볶음밥을 하실 때도 김치를 빨아서 다시 양념을 하셨다. 맛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잡기 위해서. 어머니는 음식은 요리하는 사람이 내고 싶은 맛을 마음대로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신다. 그래야 음식대접할 사람에 맞추어 간을 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맛으로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다 보니 원재료의 강한 맛을 덜어내시는 편이다.

만두 들고 농성장 방문

지난 연말에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열병합발전소 앞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에 연대를 갔다. 파인텍노동자들이 발전소 굴뚝에 올라 지금까지도 기약 없이 고공농성중이다. 원래 한국합섬 노동자들이었는데 회사가 스타케미칼에 헐값에 넘겨진 후에 고용승계와 노동탄압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오다가, 2015년에 노사합의하에 일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사가 합의한 협상을 사측에서 2년 가까이 응하지 않는 식으로 사실상 파기함으로써 지난 10월에 박준호 홍기탁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다시 투쟁에 나섰다.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부도난 공장을 재가동하면서 고용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헐값에 인수해 놓고는 사실상 약속기간 2년이 지나자마자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공장을 팔아버렸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어떤 제재도 없이 수익은 자본이, 고통은 노동자들이 떠안게 됐다.
문재인정부 들어서 뭔가 세상이 많이 바뀐 것처럼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내 주변은 그리 바뀐 것이 없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더 힘겹고 어렵게 싸우고 있고,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였던 다양한 일들이 적폐청산이라는 이슈에 묻혀 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함께하는 공룡 활동가들과 2017년이 가기 전에 연대방문가기로 했고, 뭔가 음식을 나누어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날이 추우니 따끈한 닭곰탕을 끓이기로 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뭔가 힘도 북돋아주고 재미도 있는 좀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그때 함께 연대할 분들 중에 채식을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것이 만두였다.

만두를 좋아한다. 나는 만두가 세상에서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만두는 만두소만 달리하면 무궁무진한 요리가 된다. 만두피 안에 자신이 원하는 맛을 집어넣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요리법 같다고 할까? 채식을 하신다니 표고버섯을 채 썰고, 느타리버섯을 찢고, 팽이버섯 밑둥을 잘라 넣은 후에 부추를 채 썰어서 넣고 마지막으로 숙주와 불려서 다진 당면을 넣었다. 그리고 소금과 후추, 대파 다진 것, 마늘 다진 것을 약간 넣어서 버무리면 채식만두소. 이게 무슨 맛일까 싶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버섯향과 부추와 숙주의 식감이 살아있어서 근사한 맛이 난다.

수다 떨며 만드는 게 재미

그래도 고공농성 중이신 분들을 위해서 뭔가 속이 든든해졌으면 해서 고기만두도 만들었다. 다진 돼지고기와 다진 새우살에 찹쌀가루와 계란 흰자를 넣어 베이스를 만들고 식감을 위해서 다진 부추와 다진 숙주를 넣은 후에 소금과 후추, 간장에 굴소스나 멸치액젓을 살짝 넣어주니 그야말로 꽉찬 감칠맛이 일품인 고기만두가 되었다.
만두는 요리하는 것 자체도 재미난 일이다. 비록 만두소는 내가 만들었지만 연대하러 가자고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대로 모양을 빚고,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서 일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식이랄까 ?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에서 함께 만두를 먹었다.

평생 처음 만두를 만들 때 예쁜 모양대로 빚어지지 않아서 당황하지만 이내 수다 떨며 만들다보면 모양보다는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듯이, 투쟁하는 곳으로 연대하러 가는 것이 낯설고 무언가 겁이 날 수도 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저 함께 해 줄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연대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두는 연대의 음식이 되고, 나눔의 음식이 되고 함께하는 협동의 음식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확실히 만두를 좋아한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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