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요리에 낯선 재료 넣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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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요리에 낯선 재료 넣는 재미
  • 충청리뷰
  • 승인 2018.03.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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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마트에서 재료 사다 매운 돼지고기무찜 만들어

활동가로 산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삶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활동가들도 결국 이 사회의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삶이다보니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별개로 일상적인 삶은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활동가들도 결국엔 일상생활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고 그 나이때의 일반사람들이 경험하는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정형화된 임금노동으로 규정되지 않아서 그렇지 일반 직장인만큼이나 수많은 일들과 스트레스 사이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운 돼지고기무찜

그렇다보니 활동가의 삶을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종종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뒤늦게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그중에 공룡을 만든 초기부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의 활동들을 지지해주던 친구 한 명이 활동가로서의 삶을 접고 그동안 꿈꾸던 것들을 시작하였다.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태국의 치앙마이라는 북부도시에서 우유게스트하우스라는 한인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 친구가 우유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때부터 공룡들끼리 돈과 시간을 모아서 함께 여행할 꿈을 꾸었는데 지난 2월초 드디어 다 같이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여행하면서도 요리해서 먹는다

8박 9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휴식같은 여행을 즐겼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뭔가 친구랑 헤어지기 전에 내 손으로 직접 요리를 해서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트에 들렀다.

원래 평소 여행을 다닐 때는 사먹기 보다는 그 지역 마트를 이용해서 직접 요리해 먹는 방식으로 하는데 이번에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자체에 부엌이 없기도 하고 워낙 먹거리 가격이 싸서 사먹는데 부담이 없어서 이기도 했다. 그래도 요리를 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이 많았다. 요리를 하겠다고 결정하고 마트에 가서 당장 재료들을 살펴보는 일은 나에겐 엄청난 즐거움을 주었다.

치앙마이 슈퍼마켓은 전체적인 구성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식재료도 거의 비슷한 구성이었는데 특징적인 건 닭이나 돼지고기들이 매우 싸다는 것과 부위별로 모아서 판다는 것이다. 가령 닭은 날개, 다리나 봉, 가슴살 등등을 분리해서 파는 식이다. 다만 채소류에서 태국사람들 보다는 치앙마이 장기거주 외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다소 비싼 편이다. 여하튼 대충 마트를 둘러본 후에 내가 결정한 요리는 매운 돼지고기무찜과 바지락찜, 그리고 돼지고기 숙주볶음이었다.

태국 치앙마이 마트의 모습.
‘공룡’의 전 활동가가 치앙마이에서 운영 중인 ‘우유게스트하우스’.

매운 돼지고기무찜은 나에게나 공룡 활동가들에게는 무척 익숙한 요리다. 매콤한 양념이 베이스이고 거기에 무의 단맛과 돼지고기 수육의 고소한 맛까지 즐길 수 있는 요리다. 공룡에서는 일일주점같은 큰 행사나 소소한 행사들의 뒷풀이에 빠지지 않는 요리이다.

요리 방법도 쉬운 편이다. 무를 좀 큰 깍두기처럼 대충 썰어서 냄비에 많이 깔고 수육용 돼지고기를 그 위에 올린 다음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마을, 대파, 표고버섯, 양파, 청양고추, 굴소스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올린 후에 적당량의 물을 부어 오랜 시간 끓이면 된다. 대략 무에 양념이 충분히 밸 때까지 끓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설탕 양이다. 무랑 양파 등에서 단 맛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설탕 양을 매우 조심해서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요리하는 의미

이번 치앙마이에서 요리할 때는 게스트하우스에 다행히 한국산 고춧가루가 있어서 양념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무가 일본 무라서 매운 맛이 강했다. 이게 한국에서 재배되는 무와 달리 강한 맛 때문에 요리시간이 충분치 않다보니 무 특유의 매운 맛이 남아 살짝 아쉽기는 했다.

바지락찜도 대충 한국에서 요리할 때와 똑같이 바닥에 숙주나물을 깔고 바지락을 올린 후에 다진마늘과 다진 매운 고추, 그리고 버터를 한 스푼 정도 넣어서 쪘다. 문제는 바지락으로 한국의 바지락과 달리 강한 맛이 없고, 소위 바다 짠 맛이라는 조개 특유의 맛이 없어서 매우 싱거운 요리가 되어버렸다는 거다. 뭐 그래도 오랜만에 먹기엔 괜찮은 요리였다.

외국에서 그 지역의 재료들을 가지고 한식요리를 하다보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엄청 재미나기도 하다. 같은 레시피이지만 그 지역 농산물들이 가지는 차이들을 요리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어디서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언제든지 더 풍성해지고 요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요리가 여행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이나 요리라는 것 자체가 멋있는 곳을 찾거나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나치게 관성화 된 삶의 부분 부분들에 이질적이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차이들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각자가 가졌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이면의 얼굴을 발현하도록 그 품을 넓힘으로써 경직되고 갇혀진 내 삶의 울타리를 뛰어 넘게 하는 힘이 곧 여행을 하는 의미이자 요리를 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익숙한 레시피에 낯선 재료를 넣듯 관성화된 내 삶과 공룡의 활동에 이번 여행이 전혀 다른 이질감들을 부여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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