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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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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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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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어크로스 펴냄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낄 때 ‘나’와 다름은 매력적인 어떤 것으로 비친다. ‘나’와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다름으로 인해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정확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타인과 다른 그 무엇. ‘다름’으로 인해서이다. 그러나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픈 심리적 항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대로 유지하려는 것에 대해 혼선이 생기면 불안이라는 경고 벨이 울린다.

<말이 칼이 될 때>는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지 못하는 혐오에 대한 이야기다. 혐오적 표현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어떻게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차별이 뭐예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응당 누려야 하는 것을 그들은 누리고 살기에 차별에 대한 논의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오히려 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면 너무 예민하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금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에서 처럼 그 많은 여성이 자신의 피해경험을 피를 토하듯 말하고 있음에도 공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가해자 중심, 이성애자 중심, 남성 중심의 세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어크로스 펴냄

우리 사회에는 혐오표현에 대한 아무런 제재가 없다. 사회적 면역력이 없다. 극혐의 표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국가는 팔짱만 끼고 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나 심지어는 대선후보의 입에서 대놓고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재가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음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혐오 표현의 법적 제재로, 미국의 경우에는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면역력이 높기에 자체적으로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없다. 피해자의 삶은 뿌리째 뽑혔는데 가해자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잠시 보이지 않다가 다시 등장한다.

편견에서 출발하는 혐오

혐오 표현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을 영혼의 살인이라고 말한다. 혐오는 편견에서 출발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알게 모르게 공유된다. 이렇게 공유된 혐오표현들은 차별 행위로 이어지고 다시 이는 증오의 감정을 동반하여 증오범죄로 발전하여 집단 폭력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 혐오표현이 만연하게 된 것은 정부와 정치가들의 책임이라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사회 유력인사들,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차별적 발언과 혐오표현을 하게 되면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정당성과 보편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증오범죄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대상 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환경 속에서 발발하는 것이며, 편견이 혐오가 되고 차별이 되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계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혐오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가 저들을 ‘반대한다’가 되고 저들을 ‘반대한다’가 저들을 ‘박멸하자’가 되는 건 순간이라는 것이다.

혐오 표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국 공존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혐오 표현은 이러한 공존의 조건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아니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을수록 엉뚱하게도 만만한 상대에게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혹시 지금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극혐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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