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바꾸다, 거리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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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바꾸다, 거리에서 배우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3.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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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베 아쓰시 저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김대선
책방 ‘질문하는 책들’ 운영자

책방지기도 종종 손님으로부터 책을 추천받아 읽는다.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신간 예약 주문을 받아서 판매하는 김에 주문해서 살짝 살펴보았던 책이다. 예전부터 서점에 관련된 책은 즐겨 읽는 편이었는데, 이번 책은 제목에 서점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아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시 천천히 훑어보니 수개월 전 다른 서점의 선배가 일본에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며 SNS에서 미리 소개했던 사실이 기억났다. 잊고 있었던 책을 일깨워준 손님의 안목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책 한 권을 새로 구해서 허겁지겁 읽었다.

실은 서점에서 일을 배우는 나로서도 일본의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작은 규모의 서점인데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인 《가디언》 지에서 꼽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서점 1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곳을 아직 몰랐구나 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어차피 다른 훌륭한 서점 아홉 군데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새롭게 공부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알아가기로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서점의 이름값만이 아닐 터이니.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호리베 아쓰시 지음민음사 펴냄

저자 호리베 아쓰시는 한동안 게이분샤 이치조지의 점장으로 활동하면서 그곳을 교토의 새로운 명소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은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서점이 아니었지만, 그가 몸담은 동안 사람들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특색 있는 장소가 되었다. 과연 그는 어떻게 서점을 혁신적으로 변모시켰을까? 이 책에는 그의 겸손하고도 고집스러운 마음가짐과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한적한 골목길의 작은 서점에서 살아가는 후배의 입장에서 배울 점이 대단히 많다.

고객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의 문제는 그와 나의 고민이 일치하기에 유독 중요하게 여겨진다. 고객의 신뢰가 쌓인 서점은 그곳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좋은 책일 거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손님이 가게의 상품 구성을 신뢰하면, 이는 곧 점주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교토의 거리에서 배우다

서점의 서가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며, 서점의 제안과 고객의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한다. 서점의 역할과 사명을 물으니 장소를 제공하고 그곳에 모이는 손님에게 무언가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 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나 또한 도움이 필요하고 관점과 생각의 확장을 원하는 손님에게 더 넓고 다양한 가능성을 전하고자 한다.

호리베 아쓰시는 거리를 거닐며 서점이 아닌 다른 가게들의 생존과 성공에 깊이 주목한다. 문화는 유행처럼 개인의 성급한 시간 속에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은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 전자책과 온라인 서점이 점점 더 영향력을 넓혀가는 시대에, 동네 골목길에서 종이책을 판매하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음료나 잡화마저도 배제하고 오로지 책으로만 도전하겠다는 내 신념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모하기 그지없다. 코앞의 미래를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위태롭고 불확실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이상을 논하는 확고한 철학이 있는 삶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가 만난 거리의 가게 운영자들은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과 자본에 기대지 않고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에 맞서려고 하는 자세가 곧 젊음이라 생각하며 고고하게 우뚝 서고자 한다. 나다운 삶, 나만의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은 다양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거리를 더욱 세심히 살펴보자는 태도는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업종이 같거나 업무상 직접 연관된 곳이 아니더라도, 거리에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도움이 될 가능성이 폭넓게 열려 있다. 나는 지금껏 책 공간에만 신경을 쓸 줄 알았지 주변의 여러 가게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거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거리를 배우는 것은 곧 사람을, 삶을 배우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고 따뜻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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