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어울려사는 시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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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울려사는 시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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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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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홍의 〈농부 시인의 행복론
이 안 시인〈동시마중〉편집위원

나는 최근에서야 서정홍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정홍은 전부를 읽어볼 만한 사람이다. 그간 읽은 서정홍은 〈윗몸일으키기〉 〈우리 집 밥상〉 〈닳지 않는 손〉 〈나는 못난이〉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등 동시집이 전부였다. 시집 〈58년 개띠〉 〈아내에게 미안하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등은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고, 자녀 교육 이야기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 〈부끄럽지 않은 밥상〉은 아예 읽지도 않았다. 이밖에도 서정홍은 〈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 〈윤동주 시집〉(윤동주 시 감상) 등 여러 책이 더 있는 글쟁이이자 농부이고, 언행일치의 실천가이다.

나는 출판사 창비교육에서 곧 나올 서정홍의 청소년시집 〈청년 농부〉의 해설을 청탁 받은 걸 계기로 그이가 십삼 년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경남 합천군 가회면 나무실 마을을 찾아갔다. 내가 사는 충주에서 나무실 마을까지는 꽤나 멀었다. 몸에 피곤이 쌓여 휴게소에 자주 들르기도 했지만 세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나무실 마을에 닿았다.

마을의 낮은 곳에 자리 잡은 육각정 마당에 차를 대고 그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5년 전 산청 사는 남호섭 시인의 모친상 때 만나 잠깐 설익은 인사와 말씀을 나누긴 했지만 제대로 그이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날이 설레는 첫날이었다.

그이와는 ‘열매지기공동체’ 식구이자 오랜 동지이며 동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 정상평 시인, 산청간디학교 교장인 남호섭 시인과 저녁을 같이 먹은 다음, 농부 목사님 가족이 운영하는 북카페에 들러 ‘담쟁이 인문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이에 대해 아는 게 이리도 없이, 질문거리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겁도 없이 이렇게 먼 길을 달려오다니. 심지어 해설 쓸 원고마저 고작 한 번밖에 읽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인연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그이의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이태 전 귀농해 살고 있는 이인화 씨 집에서 잠을 얻어 자면서도 준비 부족을 자책하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른 아침 깨어 이인화 씨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책감을 더욱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말하자면 서정홍은 그이의 삶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인이 결코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시를 이해하려면 삶까지 알아야
어떤 일도, 어떤 마을도 거저 생겨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삶이 깊이 녹아들어 있기 마련이다. 열두 가구가 함께하는 ‘열매지기공동체’나 ‘담쟁이 인문학교’, 그이가 몸담아온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경남생태귀농학교 등은 누군가의 온몸이 작용하지 않고는 무엇 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이들이 그이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서 그가 말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온몸으로 관계의 농사를 짓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며 덕이 높은 농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이의 아내이자 동지인 한경옥 님이 차려낸 아침 밥상은 특별했다. 전복죽은 어디서도 맛본 적 없이 깊고 구수한 맛이었으며 감자전은 쫀득하면서도 담박했다. 손수 거둔 참깨를 양껏 넣은 참깨장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상을 물리자 마당 텃밭에서 거둔 상추와 치커리, 아삭고추, 햇감자와 햇마늘, 자주양파와 자주감자를 한아름 떠안기는데 내가 일찍이 받아본 어떤 꽃다발보다 다채롭고 풍성하며 아름다웠다.

농부시인의 행복론 서정홍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주변 지인들이 힘을 보태어 지었다는 흙집은 편안하고 정갈했으며, 마당가에 자라는 채송화, 봉숭아, 분꽃은 주인 내외처럼 선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듯했다. 동물만 주인을 닮는 것이 아니었다. 골짜기 깊은 곳에 사는 정상평 시인의 집에 들러 그이의 부인과 아들 구륜 군을 만난 것도 잊히지 않는다. 내외를 이어준 것도 그이라고 하니, 그 각별함을 감히 따를 수 없을 것이다.

환대를 받고 돌아와 많은 뉘우침을 얻었다. 시의 배후이자 바탕은 언제나 그 시를 쓴 시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사람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부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글로 된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글의 바탕을 이루는 삶이라는 텍스트를 빼놓은 읽기는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 봤자 절반 이상을 읽었다고 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서정홍을 거의 다 읽었다. 안 읽은 것은 새로 읽고, 읽은 것은 다시 읽었다. 독자들께도 서정홍을 권해 드린다. 시집, 동시집, 산문집 어느 것이라도 좋다. 이왕이면 하나도 빼놓지 마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이는 삶과 글이 일치된,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어린이부터 청소년, 어른까지, 배운 이든 못 배운 이든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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