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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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7.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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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수 충북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변화와 개혁은 우리가 역사적 결과로 나타나는 틀을 깨고 나올 때, 그 때 비로소 드러내는 얼굴이다. 변화는 그렇게 틀을 깨는 아픔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왜냐하면 형성된 생각의 틀을 변화시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아픔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역사 속에서 변화를 가져오는 개혁은 깨치고 나가는 도전적 성품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과학의 발전도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또한 발전 과정에서 늘 기존의 오류를 보완하고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틀을 형성해간다. 이렇듯, 변화의 대원칙이 바로 과학의 본질이다.

변화의 대원칙이 적용되는 우주에 관한 예를 들어보자. 우주와 같은 자연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정보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그 정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현재 인류가 천체물리학과 천문학 등의 관련 연구 분야 지식의 현실적 한계성을 바탕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에 대하여 지극히 일부분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저 많은 별들 중에 우리가 방문해 본 별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과학의 세계에 대하여 아주 적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저 경이로운 대자연의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다보고 있는 수준이다. 어쩌면 인류는 당분간 이러한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구성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과 틀을 제공한다. 이해의 방법과 틀에 수학적인 개념과 철학적인 개념이 녹아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이고, 철학은 수학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100년을 넘기 힘들다. 이 생명의 한계성은 유한한 존재의 풀어야 할 필연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생물체의 유전자가 전달하는 정보의 생명에 대한 의존성에 비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인간의 생각은 아주 특별한 특성을 갖고 있다. 과학이론은 수없이 많은 세대를 통해 개선되고 발전하는 무한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인류는 이론을 통하여 수백 년 전의 생각과 사상에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력의 계승을 위해 과학 이론은 늘 수정되고 변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추월하여 그 생명력을 키워 간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과학의 역사적 연결고리에서 어떤 형태로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과학은 어쩌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하여 사회의 변화와 동떨어진 형태로 발견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왔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을 해왔고 어떠한 방향으로 변해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 대학의 과학교육 현장은 참담하다. 현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과학교육은 분명히 현실에서 멀리 존재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 지나치게 연연해하는 경우 과학교육은 자신의 과거의 산물인 현재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과학교육은 인류의 미래가 설계되는 생각의 틀을 형성해가는 새로운 개혁적인 생각들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현재 과학의 눈으로 우주의 세상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풀리지 않은 비밀들의 이해는 스스로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비밀은 우리 스스로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어느 순간에 불현듯 다가 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틀에서 탈피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들의 틀에 얽매여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주의 별은 아득히 멀리 있지만, 별빛은 이미 다가와 우리 현실의 가슴 속에 살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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