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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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 충청리뷰
  • 승인 2018.08.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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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그 작은 서점에는…

섬은 외롭다.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두 발로 걸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 사람들은 섬과 육지를 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다리를 만들거나, 풍랑에도 뒤집히지 않는 큰 배를 띄우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길을 열어서라도 기어코 섬을 이었다. 그렇게 육지와 이어진 섬에는 사람들이 왔고, 문명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거주 인구 2천 명이 채 안되는 제주의 작은 섬 우도에도 어느 날, 책방 하나가 가만히 문을 열었다.

<밤수지맨드라미>
이 독특한 이름은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산호에서 따왔다. 부드러운 줄기와 선명한 주황빛 몸체가 마치 여러 개 밤송이가 나무에 열린 것처럼 활짝 피어있는 모습. 그러나 제주에 서식하고 있는 이 바다 생물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 사라져가는 종이책과 서점의 운명과도 닮아있는 듯한 이 아름다움을 찾아서 제주도의 동쪽 끝, 우도로 갔다.

이곳을 지키는 책방지기 밤수지와 맨드라미가 우도에 들어온 지는 5년이 넘었다. 연애 시절, 제주도로 캠핑을 왔다가 우도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이 섬에 반해 여기서 같이 살자고 했단다. 낡았지만 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은 집을 하나 샀고 무려 5년 동안 천천히 둘이 함께 그 집을 고쳐가며 살았다. 섬에 살러 온 젊은 부부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은 언제나 세 가지였다. 뭐하러 왔어? 무슨 장사 할 거야? 여기서 얼마나 살 거야?

책방 ‘밤수지맨드라미’ 내부 모습.

 

젊은 부부의 수첩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았고, 답 없는 이들의 무모함이 안타까웠던 이웃 주민들은 나서서 이들에게 답을 구해주려 애썼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돼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햄버거를 먹으러 몰려온다는 유명한 식당 옆에 빈 집이 나오자 이들 부부에게 여기서 뭐라도 하라고 집을 내주었다. 이렇게 목 좋은 자리에선 뭘 해도 먹고 살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다정한 이웃들의 성원, 혹은 안타까운 응원을 등에 업고 2017년 7월, 부부는 책방을 열었다.

공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회색빛 실내를 가득 채운 긴 햇살이 조명처럼 서가를 비추고 있었다. 가득 채워있기 보다는 여백이 있었던 서가, 그러나 어떤 것 하나 허투루 놓여진 것 없이 책 한 권과 소품 하나에까지 책방지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느낌. 물론 어느 곳이야 그렇지 않을까마는, 또한 나날이 생겨나는 작은 책방들이라면 가볼 만큼 가봐서 이젠 어디를 가도 새롭지 않다고 생각했건마는,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바다와 바람 뿐인 이 작은 섬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는 책방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생물의 이름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책방지기들은 생태와 인문 에세이를 중심에 놓고 싶었다고 했다. 제주도와 우도의 자연 환경을 담은 책들과 사진, 그림이 곳곳에 놓였다. 다양한 재능을 뽐내는 독립출판물들도 잘 엄선해 놓았다. 제주도의 다른 책방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제주도만의, 나아가 우도만의 것을 표현한 손수건이나 그림 지도, 뱃지와 엽서들 같은 지역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디자인과 상품성이 뛰어나서 모두 쓸어 담고 싶었다.

공간이 크진 않지만 음료도 같이 팔고 있어서 변덕스러운 섬의 날씨, 비와 바람을 피해 책방에 들른 사람들이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섬에 혼자 온 여행객들이 이렇게 한참을 앉아있다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간 출렁출렁’이라 이름 붙인 작은 공간에서는 원화전이나 사진전 등 기획전시를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다. 두 달에 한 번은 ‘심야책방-책 헤는 밤’도 열고 있다. 관광객들이 막배 시간에 맞춰 모두 빠져나간 밤 시간,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지역 주민들과 이곳에 일하러 온 젊은 친구들이 고대하는 밤이다.

밤수지맨드라미 전경
책방지기 밤수지와 맨드라미.

“바다 밑 깊은 곳에서는 밤수지맨드라미 같은 산호가 건강하게 자라야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고 생태계 질서가 지켜진대요. 우리 책방도 이 작은 섬에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책방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뭍으로 가신 분들이 이 공간을 그리워하며 소식을 주실 때 고맙고 기뻐요. 우도의 소식을 나눌 수 있는 뉴스레터도 만들면서 섬에 있는 이웃들과 재미나게 살아보고 싶어요.”

<섬에 있는 서점>이라는 소설에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 글처럼 섬에 있는 작은 서점의 존재는 고립된 섬으로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 하늘을 넘어 육지와 이어져있다는 우정과 연대의 표식으로도 읽혔다. 폭염으로 잠 못 이루는 육지의 깊은 산 속에서, 바람 부는 그 섬의 작은 책방을 생각해본다.
섬에 있는 작은 서점이 등대처럼 오래 그곳에 남아주기를 빌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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